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서국 (문서 편집) [include(틀:진한의 국가)] 伊西國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청도)|이서면]](伊西面)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다. 이서소국(伊西小國), 이서고국(伊西古國)이라고도 한다. 다른 성읍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서국에 대해서도 문헌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26 청도군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 때 멸망하고 그 뒤 솔이산(率伊山)·경산(驚山)·오도산(烏刀山)에 있는 세 성과 합쳐 대성군(大城郡)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있다. >밀성군(密城郡)은 원래 추화군(推火郡)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이 군에 속한 현은 다섯이다. 상약현(尙藥縣)은 원래 서화현(西火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의 영산현(靈山縣)이다. 밀진현(密津縣)은 원래 추포현(推浦縣)[죽산(竹山)이라고도 한다.]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은 위치가 분명치 않다. 오구산현(烏丘山縣)은 원래 __오야산현(烏也山縣)__[구도(仇道) 또는 오례산(烏禮山)이라고도 한다.]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은 청도군(淸道郡)에 병합되었다. 형산현(荊山縣)은 원래 __경산현(驚山縣)__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은 청도군에 병합되었다. 소산현(蘇山縣)은 원래 __솔이산현(率已山縣)__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인데 지금은 청도군에 병합되었다. >密城郡 本推火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五 尙藥縣 本西火縣 景德王改名 今靈山縣 密津縣 本推浦縣[一云竹山] 景德王改名 今未詳 烏丘山縣 本烏也山縣[一云仇道 一云烏禮山] 景德王改名 今合屬淸道郡 荊山縣 本驚山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淸道郡 蘇山縣 本率已山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淸道郡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42819&categoryId=49615&cid=49615|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三國史記 卷第三十四 雜志 第三) 신라 양주]] 또 《[[삼국유사]]》 권1 이서국조에 보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 14년(37년)에 이서국 군대가 금성(金城), 즉 신라의 경주를 쳤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권2에는 [[유례 이사금]] 14년(297년)에 이서국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는 대병으로 막았으나 이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때 홀연히 이병(異兵)이 나타나 신라병과 연합하여 이를 물리치게 되었는데, 이 이병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왕인 [[미추왕]]의 왕릉인 죽현릉(竹現陵)에 죽엽(竹葉)이 쌓인 것을 보고, 선왕이 음병으로 신라를 도운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 권1 미추왕 죽엽군조(味鄒王竹葉軍條)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본 신라 제3대 [[유리 이사금|유리왕]] 14년과 제14대 [[유례왕]] 14년의 기사 내용이 서로 비슷하면서 시대를 달리한 것은 기록 차이로 생각된다. 두 왕의 이름이 비슷한 것도 기록이 꼬였던 정황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서도 "고기(古記)에는 제3대와 제14대 두 임금의 이름을 같이하여 유리(儒理) 또는 유례(儒禮)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두 왕의 이름은 서로 다른 한자로 음차했을 뿐 같았다.] 이처럼 이서국의 멸망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14대 유례왕 때까지 성읍 국가로 존속해 오다가 신라에 멸망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경부철도가]]의 43절에 등장하는 '소이서국'이 이 나라를 지칭한다. [[분류:삼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