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숭가 (문서 편집) [include(틀:송사)] ||<-2> '''{{{#ece5b6 북송의 대신[br]{{{+1 尹崇珂 | 윤숭가}}}}}}''' || || '''{{{#fff 성씨}}}''' ||윤(尹) || || '''{{{#fff 이름}}}''' ||숭가(崇珂) || || '''{{{#fff 부친}}}''' ||윤정훈(尹廷勳) || || '''{{{#fff 생몰}}}''' ||932년 ~ 973년 || || '''{{{#fff 출생}}}''' ||진주(秦州) 천수현(天水縣) || || '''{{{#fff 주군}}}''' ||[[태조(후주)|주태조]][br][[세종(후주)|주세종]][br][[공제(후주)|주공제]][br][[태조(송)|송태조]] || || '''[[국적|{{{#fff 국적}}}]]''' ||후주(後周) → 북송(北宋)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대십국시대]] [[후주]], [[북송]]시대의 인물로 진주(秦州) 천수현(天水縣) 출신. == 생애 == 윤숭가는 932년에 자주(磁州), 동주(同州), 저주(滁州) 자사를 역임한 윤정훈(尹廷勳)의 아들로 진주 천수현에서 태어났으며 뒤에 대명현으로 옮겨 살았다. 윤숭가는 후주의 명군인 시영을 섬겨, 시영으로부터 신중하고 돈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뒤에 시영이 [[세종(후주)|세종]]으로 즉위하면서 윤숭가는 동서반도지(東西班都知)로 임명되었고, 시영 휘하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워, 도우후, 도지휘사를 역임하였다. 960년 북송이 건국되자 윤숭가는 치주(淄州) 자사로 임명되어, 치주에서 선정을 펼쳐나갔다. 뒤에 호남 정벌에 참여하면서 행영전군마군도지휘사가 되었고, 형상(荊湘) 평정 이후에는 낭주(朗州) 단련사로 제수되었다. 또한 [[남한(오대십국시대)|남한]] 정벌에도 참여하여 남한의 마지막 군주인 [[유창(남한)|유창]]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지광주(知廣州), 시박전운등사로 임명되고 보신군 절도사가 되었다. 얼마 안 있어 남한의 잔당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윤숭가는 이들을 토벌하였고 973년에 사망하였다. 윤숭가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훗날 북송의 제2대 황제가 되는 조광의에게 시집을 갔다. 하지만 윤씨는 송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죽었고, 태종이 즉위한 뒤에 [[숙덕황후]]로 추존되었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932년 출생]][[분류:973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