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낭소리 (문서 편집) [[파일:워낭소리개봉포스터.jpg|width=350]] [목차] == 개요 == 현대에는 보통 [[트랙터]]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기 때문에 보기 드문 [[소]]로 농사를 짓는 시골 할아버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이다. 원래 모 지상파에 방영하기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촬영 당시인 2008년에 소로 농사를 짓고 이동수단으로 소달구지를 이용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영어권 개봉 시 제목은 Old Partner. 제목의 워낭은 마소의 목에 거는 방울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어권의 [[카우벨]]과 그 역할이 같다. == 흥행 == 2009년 1월 15일에 개봉했으며 다큐멘터리에 독립영화라는 조건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흥행을 기록했다. 관객 수는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으로, '''2,953,076명, 약 3백만명에 달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닌것 같겠지만 2009년 당시엔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A급 연기파 스타로 불리는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들도 이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입소문으로 퍼질 뿐이었지만 [[CGV]]같은 대형 영화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개봉 초기에 CGV에 걸리지도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SNS도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고 영화 관람객 자체가 적었던 10년 전에 이 관객을 낸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영화관에 나오는 일도 많았다. 이전까지 독립영화 관객수 최다기록은 아일랜드의 음악영화 [[원스]]가 가지고 있었다. 총 관객 수는 225,000명, 그러니까 거의 10배 이상의 초월적인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 셈이다. == 논란 및 사건사고 == 개봉 직후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는데 사람들이 '''"이런 촌구석에 어르신을 방치하는 불효자!!"''' 라면서 출연하신 노인분들 중 한분의 아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출연하신 어르신께서는, 영화 개봉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진 바람에 오히려 평화롭던 일상이 깨질 정도였다고 표현하셨다. 덕분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서명운동으로 노부부를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외쳤다.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할머니 잔소리고 두 번째가 워낭소리 감독인 이충렬이라고 일갈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싫어할 수도 있다. 저 관광객 문제는 2차 문제. 촬영하면서 얼마나 사생활에 피해를 입었을까 생각해 보자. 일상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힘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했으니…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유사한 성격의 문제는 영화 [[집으로...]]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 여담 == 최원균의 집 옆에 작품에 출연한 소의 무덤이 있으며 [[청춘불패]] 출연진들이 거기 가서 추모하기도 했다.[* 당시 나르샤, 노주현, 이순규, 효민만 갔었다.] 참고로 촬영지가 촬영지인 만큼 등장인물들이 모두 진하디진한 [[동남 방언|경상도말]]을 구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한글 자막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이 자막이 군데군데 틀린 부분이 있다. 뜻이 아예 오역되진 않았지만, 경상도 사람 입장에서는 자막 보고 "저게 저 뜨시 아인데" 싶은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미국]]의 영화제에 상영되었고 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미국 관객들도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가 이 영화내용을 담은 책에 실렸다. 그런데 정작 농촌 출신 어르신들에게는 무덤덤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 한 시골 출신 할머니는 '''"웬 소새끼만 나오는 걸 보고… 영화 볼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걸 사 먹지…"''' 물론 딱딱한 도시생활 중 농촌생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재미있게 보는 노인분들도 적지는 않았다. <워낭소리>는 순제작비가 8,500만 원이며 극장에서만 190억 7,439만 8,900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케팅 비용 포함해도 2억 원으로 '''수익률 9,500%'''의 기적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수익 분배로 인한 다툼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 대신 엄청난 수익률에 대한 상업적인 관심만이 나타나는 씁쓸한 결과를 보여 줬다. <워낭소리> 다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2번째로 관객이 많이 본 영화는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를 다룬 <[[울지마 톤즈]]>로 약 44만 5천 관객이다. 그 다음 4위가 [[나는 갈매기]][[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071515551003|#]]의 11만 4천 이며[* [[롯데 자이언츠]]야구단을 밀착취재한 다큐영화.롯데 야구단 홍보성 영화인 만큼 [[롯데시네마]]의 전폭적인 지원과 야구팬이라는 잠재관객의 확보로 다른 독립영화들 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수립한 기록이다.], 그 밖에 10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는 거의 없다. 종교성 영화 제외이다. 교회 같은 곳에서 장기간 개봉하기 때문이다. [[울지마 톤즈]] 같은 경우엔 일반 극장 상영 관객 수로만 2위로 인정받은 것이다. 독립 저예산 영화 특성상 관객 1만 넘기기도 어려운 판국에 이 영화가 대박을 거두었다고 독립영화 개봉관이 늘어나지도 않고, 극장은 여전히 외면하는 판국에 이런 1편의 성공으로 저런 발언하는 게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 그리고 2014년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워낭소리 흥행을 깼다. 둘 다 똑같이 노인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중 하나인 [[파라킹 홈쇼핑]]에서 [[김재욱]]이 [[유민상]] 명품 가방은 100% 국내산 소가죽으로 만들었는데, '''[[고인드립|할아버지가 20년 동안 피붙이처럼 키워온 누렁이를 죽여서 가죽을 벗겨 만들었고 심지어 가방에 누렁이의 워낭을 달았다]]'''는 드립을 쳤다. == 뒷이야기 == 그리고 감독 이충렬은 이후 사기를 당해 많은 돈을 날려 <매미소리>라는 후속편 다큐멘터리 기획이 죄다 엎어졌다. 게다가, 이 <워낭소리> 제작자와 수익금 분배를 두고 소송을 제기 중인 데다가 2011년 6월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다.[[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10812101229944&RIGHT_ENTER=R11|#]] 그리고 워낭소리를 제작한 것을 몹시 후회한다고 한다.[[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812000area|#]] 2013년 10월 1일, 최원균 할아버지가 향년 85세로 별세했다.[[http://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605537.html|#]] 세상을 떠나기 전, 누렁이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오지랖 넓은 일부 관객들에게 불효자라고 욕을 먹었던 최원균 할아버지의 아들은 셋째아들이자 서울힐튼호텔의 [[요리사]] 최종섭씨였으며, 2014년 고향으로 귀농하여 부농이 되었다고 한다.[[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226_0012749572&cID=10602&pID=10600|#]] [[인간의 조건]] 시즌 3에서 [[최현석]]이 이를 거론했다. 그 외에 장남 최영두는 서양화가, 4남 최명진은 트로트 가수이다. [[청춘불패 시즌1]] 20회에 나왔다. 딸 최순영은 귀농다큐 살어리랏다에서 동생 최종섭과 함께 출연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6월 18일, 이삼순 할머니가 향년 87세 별세했다.[[https://news.v.daum.net/v/20190620155745632?f=p|#]] 최원균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 82세였다. 하지만 기사에는 81세라 표기되어 이는 오류로 보인다. 2019년 7월, 촬영지가 화재로 창고 1개만 빼고 전부 불탔다. 그리고 한 달이 넘도록 방치되고 있었다. 아들 최씨는 건축가와 후배 등이 불탄 집을 테마공원으로 만들어 워낭소리의 흔적을 보존할 계획이라고 하며 [[봉화군]]도 화재 폐기물 처리 등 지원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8261570034281?did=DA&dtype=&dtypecode=&prnewsid=|#]] 이충렬 감독은 투병 이후 2013년부터 [[매미소리]]라는 극 영화 제작을 추진하였고 2016년 크랭크인 예정이었다가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어 '매미소리'를 2019년 9월 대본 읽기를 마치고 촬영을 시작했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0464656|#]][[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561193151077244008|#]][[https://entertain.naver.com/read?oid=214&aid=0000978383|#]] 이후 2022년에 극장가에 개봉했다. == 내용 == [include(틀:스포일러)] 등장인물은 40년을 산 늙은 소 "누렁이"(1967∼2008)[* 소의 평균 수명은 보통 15년에서 20년 사이이므로 평균 수명의 2배, 사람으로 치면 160살 이상을 산 셈이니 대단히 장수한 셈이다. 참고로 기록된 가장 장수한 소는 1993년 48세로 사망한 [[아일랜드]]의 빅 베르타라는 이름의 암소였다.]와 팔순 노인 최원균 씨와 이삼순 씨 부부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니까 본인 역. 40년을 동고동락하며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온 소와 인간이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중간에 자식들의 계속된 권유로 한번 소를 팔려고 하지만[* 사실 팔기 싫어서 일부러 [[바가지|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 '''너무 나이가 들고 고생한 탓에 빼빼 말라서''' 아무도 안 샀다. 측은하게 여긴 상인들이 웃돈을 주고 팔라고도 한다. 누렁이의 체력 부담을 덜기 위해 새 소를 한 마리 사기도 했는데 요즘 세상에 일소가 있을 리 없어 육우를 들여온지라 '''말을 잘 안 들었고 자꾸 늙은 소를 괴롭혀서''' 관객들에게 욕을 먹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새끼를 밴 상태여서 낳고 기르는데 시간 보내느라 일은 늙은 소가 다 하고 축사에 틀어박혀서 놀고 먹었다. 그래도 송아지와 헤어지면서 우는 장면은 찡하다. 감독의 후일담에 의하면 이 젊은 소는 어느 정도 길들여져서 할아버지의 수레를 끌게 되었는데 너무 빨라서 할아버지가 적응을 못 하셨다고. 시작부터 소가 늙었던지라 아팠는데, 결국 1년 뒤에 너무 나이가 들어 쓰러진 채로 일어나지 못하다 하늘나라로 갔으며 그 뒤에는 소가 일하던 밭 한가운데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분류:2009년 영화]][[분류: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분류:한국의 독립영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