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장 (문서 편집) [include(틀:역대 후진 황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33595 0%, #9966cc 20%, #9966cc 80%, #633595)" '''{{{#000 요진 초대 황제[br]{{{+1 太祖 武昭帝 | 태조 무소제}}}}}}'''}}} || || '''[[묘호|{{{#000 묘호}}}]]''' ||<(> '''[[태조]](太祖)''' || || '''[[시호|{{{#000 시호}}}]]''' ||<(> 무소황제(武昭皇帝) || || '''[[성씨|{{{#000 성}}}]]''' ||<(> 요(姚) || || '''[[연호|{{{#000 연호}}}]]''' ||<(> 백작(白雀, 384년 ~ 386년)[br]건초(建初, 386년 ~ 393년) || || '''[[휘|{{{#000 휘}}}]]''' ||<(> 장(萇) || || '''[[자(이름)|{{{#000 자}}}]]''' ||<(> 경무(景茂) || || '''{{{#000 생몰 기간}}}''' ||<(> 330년 ~ 393년 || ||<|4> '''{{{#000 재위 기간}}}''' ||<(> '''{{{#000 요진의 진왕}}}''' || ||<(> 384년 ~ 386년 || ||<(> '''{{{#000 요진의 황제}}}''' || ||<(> 386년 ~ 393년 || || '''{{{#000 부친}}}''' ||<(> [[요익중]](姚弋仲)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호십육국시대]] 16국 중 하나인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의 초대 황제로 자는 경무(景茂)였다. 묘호는 [[태조]](太祖)였으며 시호는 무소황제(武昭皇帝)였다. == 생애 == === 초기 생애 === 요장은 330년에 강족의 수장인 [[요익중]]의 2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352년에 요익중이 죽자, 요장의 형인 [[요양(후진)|요양]]이 요익중의 뒤를 이었다. 요양은 아버지 요익중의 유언에 따라 부족을 이끌어 [[동진]]으로 귀순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진으로 향하던 도중 요양은 [[저족]]의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의 공격으로 전멸할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요양의 말이 전진군의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요양이 낙마할 위기에 빠지자, 요장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형 요양을 구했다. 이 일로 요장은 요양으로부터 많은 총애를 받게 되었다. 요장은 요양을 따라 동진에 귀순했지만, 353년 동진의 은호로부터 공격을 받은 이후로 사실상 형을 따라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 전진에서 === 357년 요양이 전진의 폭군인 여왕 [[부생]]에 의해 전사하자, 요장은 요양의 뒤를 이어 부생에게 항복했다. 이후 요장은 제3대 세조 선소제 [[부견]]의 치세하에서 다대한 전공을 세우고, 용양장군에 임명되었다. 이후 383년 부견이 동진을 대침공할 때 요장은 익주 지역의 방비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부견이 동진과의 [[비수대전]]에서 참패하자(383. 11) 요장은 긴급히 전진의 수도인 장안으로 복귀했다. 384년에 [[모용홍]]이 전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부견은 아들인 부예(苻叡)를 파견하여 모용홍을 토벌하도록 했고 요장을 부예의 사마로 삼았다. 여기서 모용홍에게 부예가 패배하자, 요장은 사자를 보내 부견에게 사죄했으나, 부견은 오히려 요장이 보낸 사자를 죽이고 요장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했다. 부견에게 두려움을 느낀 요장은 북지로 달아나 반란을 일으키고 '만년진왕'(萬年秦王)을 자칭하며 후진을 건국했다. === 후진의 창업군주 === 후진의 왕이 된 요장은 부견이 [[서연(오호십육국시대)|서연]]의 [[모용충(2대)|모용충]]과 싸우고 있는 동안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때 모용충에게 차남 요숭을 인질로 보내 모용충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모용충이 장안을 점령하고 부견이 오장산으로 도망치자, 요장은 부하를 보내 부견을 추격했고, 부하가 부견을 붙잡아 압송하자, 요장은 부견을 신평의 한 사찰에서 교살했다. 이때가 385년의 일이었다. 부견을 살해하고 1년 뒤에, 요장은 전진의 수도였던 장안을 차지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후진의 초대 황제가 된 요장은 전진의 남은 세력들과 항쟁했는데, 386년 전진의 황족이었던 [[부등]]은 선제 부견의 복수를 내걸고 전진의 황제에 즉위하며 요장과 대결했다. 요장은 전진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통해 세력을 강화하다가, 393년에 세상을 떠났다. 요장은 사후에 뒤를 이은 [[요흥]]에 의해 태조 무소황제로 추존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역대 후진 황제)] [include(틀:진서)] [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황제]][[분류:330년 출생]][[분류:393년 사망]][[분류:강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