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산군 (문서 편집) [[분류:경상북도의 폐지된 행정구역]][[분류:구미시]][[분류:향토사]][[분류:1895년 설치된 행정구역]][[분류:1995년 폐지된 행정구역]] [Include(틀:대한민국의 폐지된 행정구역)] [[파일:선산군기.svg|width=300]] 선산군의 [[깃발]]. '[[山]]'자를 취한 형식으로 [[1995년]] [[구미시]]와 통합하면서 폐기됐다. [목차] == 개요 == [[파일:선산군 행정.png]] [[1995년]] [[1월 1일]]부로 [[도농통합]] 행정개편으로 [[구미시]]와 통합되어 사라진 [[경상북도]]의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 [[군청]]은 [[선산읍]][* 구 선산군청 청사는 현재 구미시청 선산출장소로 사용되고 있다.]에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일선[* [[선산 김씨]]를 일선 김씨로 부르기도 한다. [[일선교]]라는 다리도 있으며 구미 시내버스 운영사 중 [[일선교통]]이 있다.], 숭선[* [[숭선대교]]라는 다리가 있다.], 선주[* [[선주고등학교]]가 있다.], 화의군(和義郡)이 있다. == 역사 == [[신라]] 때 [[사벌주]](沙伐州)를 폐하면서 일선주(一善州) 또는 숭선군(嵩善郡), [[고려시대]]에는 선주였다가, 곧 [[상주시|상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다시 일선현이었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했고, [[조선시대]] [[태종(조선)|태종]] 때 선산군이 되었다. 이때를 전후해 [[고려]] 말 [[삼은]]이자 [[사림]]의 뿌리가 되는 야은 [[길재]]가 낙향한 곳[* 원래 (해평) 길씨의 뿌리는 바로 옆 해평면에 자리잡은 귀화인 길당이었다.]이기도 하여 여기에 길씨의 일가인 선산 길씨가 있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된 적도 있었다. == 구미시와의 지위 역전 == 현재 구미시청이 있고 구미의 중심지가 된 옛 구미읍[* [[1963년]] 이전에는 구미면]과는 불과 한 세기만에 처지가 뒤바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그 시작은 [[1900년대]] 초 개업한 [[경부선]]이 당시 선산군의 중심지였던 선산읍 대신 구미면을 지나가게 되면서부터였다.[* 선산과 구미의 사례 외에도 [[경부선]] 개업 이후 지역의 흥망성쇠가 엇갈린 곳은 많다. 그 예로 [[대전광역시|대전]]은 [[충청남도]] 회덕군 소속의 일개 '''리(里)'''에 불과했으나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 지역이 된 이후 급성장하여 현재는 [[광역시]]로 성장했다. 반면 이전까지 충청남도의 전통적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공주시|공주]]는 쇠퇴하고 말았다.] 이후 교통이 편리해진 구미면이 나날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구미면은 [[1963년]] 선산군의 유일한 읍인 구미읍(1읍 8면)으로 승격되고[* 선산면은 [[1979년]]이 되어서야 읍으로 승격된다.], [[1978년]] 지금의 구미시 동부에 해당하는 [[칠곡군]] 인동면을 편입하여 구미시로 분리, 승격되었으며, 그 후 [[1995년]] 선산군이 [[도농통합]]으로 인해 구미시에 역으로 통합되었다. 역사를 생각하면 역통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예로 [[동래|동래군]]과 [[부산광역시]], [[영일군]]과 [[포항시]] 등이 있다. 부산은 [[구한말]]까지 동래부라고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개항장 지역만을 부산부로 개칭하고, 개항장 교외 지역을 동래군으로 분리시켰다. 이후 부산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모체인 동래군을 조금씩 편입하게 되어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된 것. 포항시의 경우 영일군 포항읍에서 승격된 도시였으나, 1995년 도농통합 당시 오히려 자신의 모체인 영일군을 흡수하여 '영일시'가 아닌 '포항시'란 이름이 유지되게 되었다. 그니까 영일만이라는 곳은 원래 포항시가 아니라 영일군 소속이였던 셈.] 즉, 옛 구미면이 선산군을 [[역키잡]](?)한 셈이다. 선산군은 도농통합으로 군명(郡名)을 잃고 선산읍이라는 읍명(邑名)으로만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선산과 구미의 관계가 역전된 연유는 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박정희]]의 고향이 당시 선산군 구미면, 즉 지금의 구미시 시내 지역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경부선은 이미 [[1916년]]부터 개통되었지만,[* 참고로 [[경부선]]은 [[1905년]] 최초 부설 당시에는 구미를 거치지 않고 [[김천시|김천]]에서 바로 [[칠곡군|칠곡]](왜관) 방면으로 직행하는 형태의 노선이었다.(현 [[4번 국도]], [[경부고속선]]의 선형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가 [[1916년]] 구미 쪽으로 이설한 것. 자세한 내용은 [[금오산역]] 항목으로.] [[1970년대]]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구미 지역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구미국가산업단지|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 현재의 선산군 지역 == 선산읍 지역은 나날이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낙후 정체가 심해져 불만이 상당히 많다.[* 이를 체감할 수 있는게 학교 통폐합인데, 심지어는 ~~[[폐교]]될 확률이 낮은~~ 읍내의 여중, 여고까지 남중, 남고랑 통폐합할 정도라고 한다.] 더구나 최근 구미에서 [[칠곡군]]과 통합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 선산은 더욱 관심에서 멀어져[* 만약 행정구역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지자체는 새로 들어온 지역과 지존 지역을 융화시키기 위해 통합되어 새로 들어온 지역에 신경을 많이 쏟기 때문이다.] 완전히 낙후될까봐 반대가 심하다.[* 과거 면 지역이었던 [[산동읍]]보다 인구가 적었다.] 현재 이 동네에서 유명한 곳은 [[선산휴게소]][* [[대구광역시|대구]], [[밀양시|밀양]], [[창원시|창원]], [[김해시|김해]], [[부산광역시|부산]] 등 영남 남부지역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곳이고, [[2010년]] 고속/[[시외버스]] [[환승휴게소]]로 지정되어 버스 환승도 가능하다.], 금오서원, 선산[[향교]], 죽장사 정도(...).[* 이 곳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선산터미널]]도 있긴 하지만, 정말 낙후한 곳이라서...] 농담이 아니라 정말 선산에서 뭐 좀 있다고 할 수 있는 읍내의 모든 골목골목을 2시간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선산 뿐 아니라 구미 전체가 볼거리가 적다는 평이 있다.] 또한 [[선산 김씨]]의 본관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 여담 == 선산에서는 '나라의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의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출처:[[이중환]], [[택리지]], 팔도총론 [[경상도]] 편] 인재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선산의 별칭인 '장원방(壯元坊)'도 [[과거 시험]]의 [[장원 급제]]자를 여럿 배출했다 해서 나온 이름이다.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서당공원'에는 이를 설명하는 조형물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조형물은 [[김재규]] 생가 바로 앞에 있다.] [[2010년대]] 후반에는 e편한세상과 태완 노블리안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조금이나마 늘었다. 참고로 선산읍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곳은 완전리이다. [[교회]]가 많다. 무려 29개.[* 여담이지만, [[박정희]]도 어린 시절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선산읍, version=55, paragraph=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