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샬럿 어거스타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뷔르템베르크의 왕비, rd1=프린세스 로열 샬럿)]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찰스 3세의 손녀, rd1=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2> '''웨일스의 공녀[br]{{{+1 샬럿 어거스타}}}[br]Princess Charlotte of Wales'''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incess_Charlotte_of_Wales_by_Dawe_(1817).jpg|width=100%]]}}} || || '''이름''' ||샬럿 어거스타[br](Charlotte Augusta) || || '''출생''' ||[[1796년]] [[1월 7일]][br][[영국]] [[잉글랜드]] [[런던]] 칼턴 하우스|| || '''사망''' ||[[1817년]] [[11월 6일]] (향년 21세)[br][[영국]] [[잉글랜드]] [[서리(잉글랜드)|서리]] 클레어몬트 하우스|| || '''장례식''' ||[[1817년]] [[11월 19일]][br][[영국]]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 '''배우자''' ||[[레오폴드 1세]] ,,(1816년 결혼),,|| || '''아버지''' ||[[조지 4세]]|| ||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 || '''서명''' ||[[파일:샬럿 어거스타 서명.svg|width=150&bgcolor=#ffffff]]|| [목차] [clearfix] == 개요 == 왕세자 시절의 [[조지 4세]]와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지 4세]]의 뒤를 이어 [[영국]]의 [[여왕]]이 되었겠지만, 아이를 낳다 21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윌리엄 4세]]를 거쳐 작은아버지 [[에드워드 어거스터스|에드워드 왕자]]의 딸인 사촌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 작위 == || [[파일:Coat_of_Arms_of_Charlotte_Augusta_of_Wales.svg.png|width=250]] || || 문장 || * 웨일스의 샬럿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Charlotte of Wales (1796년 1월 7일 ~ 1817년 11월 6일) == 생애 == === 탄생 === [[파일:A0907286-3884-465E-914A-0E48C9096569.jpg|align=center]][[1795년]] 당시 왕세자였던 [[조지 4세]]는 고종사촌[* [[조지 4세]]의 아버지 [[조지 3세]]와 캐롤라인의 어머니 [[어거스타 프레데리카|어거스타 공주]]가 남매이다.]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와 결혼했다.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은 서로를 너무나 싫어했는데, 훗날 [[조지 4세]]가 그녀와 부부관계를 딱 세 번 밖에 안했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들은 혼인 몇 주 만에 각방을 썼고 이러한 와중에 기적적으로 아이가 생겼다. 혼인한 지 딱 9개월이 지난 [[1796년]] [[1월 7일]], 캐롤라인은 딸을 출산했다. [[후계자]]가 될 아들을 원했던 [[조지 4세]]와 달리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3세]]는 태어난 손녀딸을 매우 예뻐했다. 딸의 탄생으로 부부관계가 좋아질것 같았으나, [[조지 4세]]는 캐롤라인이 딸에게 접근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자신의 정부인 마리아 피츠허버트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 [[파일:2019-08-04-02-01-11.jpg|width=100%]] || || 어린 시절의 샬럿 공주 || 당시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탄생을 기뻐했다. [[1796년]] [[2월 11일]], 공주는 칼턴 하우스에서 '샬럿 어거스타' 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샬럿은 할머니 [[조피 샤를로테|샬럿 왕비]]로부터, 어거스타는 외할머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어거스타로부터 따왔다. [[조지 4세]]는 딸의 육아에 있어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캐롤라인]]이 절대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캐롤라인은 [[정부]]나 [[유모]]가 없는 환경에서는 절대 딸을 볼 수 없었고 육아에 있어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유모가 몰래 자리를 비켜 주었을 때 비로소 딸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어린 시절 === 샬럿이 자라면서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의 사이는 점점 더 나빠졌다. 그들은 딸을 국왕 부부의 애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고, 결국 [[1797년]]에는 별거하게 되었다. 아들을 원했던 [[조지 4세]]의 노력으로 잠시동안 관계가 회복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욱 악화되었다. 캐롤라인은 딸을 보러 종종 방문하곤 했으며 샬럿 공주 역시 어머니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집에서 머무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 [[파일: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1807.jpg|width=100%]] || || [[1807년]]의 샬럿 공주 || 그러던 중 [[1810년]] 할아버지 [[조지 3세]]의 정신병이 극에 달하였고 [[1811년]] [[2월 6일]]부터 아버지 [[조지 4세]]가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 샬럿 공주는 엄격한 교육 속에서 점차 반항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10대로 성장했다. 공부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만 공부해서 [[피아노]]와 [[승마]]는 정말 잘했지만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조지 4세가 섭정으로 바쁜 틈을 타 몰래 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지 4세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실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엄격한 지 알기에 공주에게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 [[1813년]]부터 [[조지 4세]]는 샬럿 공주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에는 부마 후보로 [[네덜란드]] [[빌럼 1세]]의 아들 빌럼 왕세자[* 훗날의 [[빌럼 2세]]로 나중에는 [[파벨 1세]]의 막내딸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다.]를 생각했다. 하지만 샬럿 공주는 빌럼 왕세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미래의 영국 여왕이 될 자신이 왜 외국인과 결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샬럿 공주의 결혼을 이용하여 북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던 [[조지 4세]]는 끝까지 빌럼 왕세자와 결혼할 것을 고집했고, 그녀는 결국 [[1814년]] [[6월 10일]] 혼인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 참석한 샬럿은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레오폴드 1세|레오폴트 공자]][* 훗날 [[벨기에]]의 초대 국왕이자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삼촌이 된다.]를 만났다. 레오폴트 공자에게 첫눈에 반한 샬럿 공주가 [[빌럼 2세|빌럼 왕세자]]와 결혼을 못 하겠다고 하자 [[조지 4세]]는 딸을 감금해버렸다. 공주는 거리 밖으로 뛰쳐나왔고 이를 본 어떤 시민이 그녀를 캐롤라인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며칠 뒤 다시 궁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일은 순식간에 가십거리가 되었다. 샬럿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공주였다. 그녀가 모습을 나타내면 영국 사람들은 샬럿이 이미 여왕이 된 것처럼 환호했다. 이런 공주가 [[네덜란드]]로 시집가버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빌럼 2세|빌럼 왕세자]]와의 결혼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815년]] 초 샬럿 공주는 [[레오폴드 1세|레오폴트 공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 [[조지 4세]]는 여전히 빌럼 왕세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샬럿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해 [[7월]], 마침내 아버지로 부터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와의 결혼을 허락받았다. 맨 처음에 [[조지 4세]]는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를 탐탁지 않아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 결혼과 죽음 === || [[파일:Charlotte_and_Leopold_wedding.jpg|width=100%]] || || [[파일:1280px-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and_Leopold_I_after_George_Dawe.jpg|width=100%]] || || 샬럿 공주와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의 결혼식 || [[1816년]] [[5월 2일]], 샬럿과 레오폴드의 성대한 결혼식이 칼튼 하우스에서 거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보려고 [[런던]]에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정말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말 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흘렀던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816년]] [[8월]] [[오페라]]를 보던 샬럿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곧 첫 아이를 [[유산(의학)|유산]]했다. 다행히도 [[1817년]] [[4월]]에 그녀는 다시 임신 소식을 발표했고, 그것은 [[영국]]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새로 태어날 로열 베이비가 아들일지 딸일지 내기를 하곤 했다. 임신 말기에 담당 주치의는 아이가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샬럿에게 체중 조절을 하도록 했는데, 이는 샬럿을 약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고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예정일이 2주가 지난 [[11월 3일]] 저녁, 샬럿의 산통이 시작되었다. 주치의는 여전히 그녀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고, 진통은 이틀이 지나도록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월 5일]], 샬럿은 아주 큰 남자아이를 사산했다. 죽어서 태어난 아이를 본 사람들은 영국 왕실 가족들을 닮은 아주 잘생긴 남자아이였다고 말했다. 샬럿은 출산 후 회복 중이었고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는 긴장이 풀린 탓에 아편을 먹고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샬럿은 구토를 하며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호흡이 불규칙했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치의와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를 데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사산의 후유증으로 숨진 듯하나 사인이 영국 왕족들이 앓던 유전병인 [[포피리아]]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샬럿은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향년 21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 [[파일:The_Funeral_Ceremony_of_Her_Royal_Highness_the_Princess_Charlotte_of_Wales_and_Saxe_Coburg_by_James_Stephanoff.jpg|width=100%]] || || 샬럿 공주의 장례식 || 샬럿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나라는 슬픔에 잠겼다. 모든 사람들은 검정색 옷을 입었고 상점은 2주간 문을 닫았다. [[조지 4세|조지 왕세자]]는 너무 슬픈 나머지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서 외동딸의 장례식에 불참하였다. 임종을 지킬 수조차 없었던 캐롤라인은 뒤늦게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혼절했고, 심지어 옛 약혼자였던 [[빌럼 2세|빌럼 왕세자]]마저도 애도를 표했다. 하루 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레오폴드 1세|레오폴드]]는 평생 샬럿을 그리워했다. 샬럿과 사별하고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재혼하지 않다가 벨기에 국왕으로 추대된 후에야 샬럿을 닮은 여성인 [[루이즈 도를레앙|오를레앙의 루이즈 마리]]와 재혼했고, 루이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벨기에의 샤를로트|자신의 고명딸]]의 이름도 샬럿의 프랑스식 인명인 샤를로트로 지었다. 심지어 레오폴드 1세는 임종 직전에도 '샬럿!'을 외쳤고 이것이 유언이 됐다고 한다. 이후 샬럿은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아들과 함께 묻혔다. 샬럿의 사망 당시 [[조지 3세]]의 적손자녀는 '''아무도 없었고'''[* 3남 [[윌리엄 4세|클래런스 공작 윌리엄 왕자]]와 6남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 프레더릭 왕자에게 자녀가 있긴 했지만 모두 서자들이었다.], [[조지 4세|조지 왕세자]]는 아내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와 관계가 파탄나서 더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조지 3세의 아들들은 급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결과 4남 [[에드워드 어거스터스|켄트 공작 에드워드 왕자]]와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레오폴드 1세]]의 누나이다. 즉, 샬럿의 시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 가족관계 == ||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13> 웨일스의 샬럿 공녀[br]{{{-2 (Princess Charlotte of Wales)}}} ||<|6> [[조지 4세]][br]{{{-2 (George IV)}}} ||<|3> [[조지 3세]][br]{{{-2 (George III)}}} || || [[프레더릭 루이|웨일스 공 프레더릭 루이]][br]{{{-2 (Frederick Lewis, Prince of Wales)}}}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 공녀]][br]{{{-2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Altenburg)}}} || ||<|3>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 공녀]][br]{{{-2 (Princess Charlotte of Mecklenburg-Strelitz)}}} || || 메클렌부르크의[br]카를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공작[br]{{{-2 (Duke Charles Louis Frederick[br]of Mecklenburg)}}} || ||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의[br]엘리자베트 알베르티네 공녀[br]{{{-2 (Princess Elisabeth Albertine[br]of Saxe-Hildburghausen)}}} || ||<|7>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br]{{{-2 (Caroline of Brunswick)}}} || ||<|3>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브라운슈바이크 공작[br]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br]{{{-2 (Charles William Ferdinand,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를 1세[br]{{{-2 (Charles I,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 || [[프로이센]]의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br]{{{-2 (Princess Philippine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3녀이다.] || ||<|3> [[어거스타 프레데리카|영국의 어거스타 공주]][br]{{{-2 (Princess Augusta of Great Britain)}}} || || [[프레더릭 루이|웨일스 공 프레더릭 루이]][br]{{{-2 (Frederick Lewis, Prince of Wales)}}}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 공녀]][br]{{{-2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Altenburg)}}} || [[분류:하노버 가문]][[분류:영국의 공주]][[분류:하노버의 공주]][[분류:1796년 출생]][[분류:1817년 사망]][[분류:웨스트민스터 출신 인물]][[분류:윈저 성 안장자]][[분류:출산 중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