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루스 매캔들리스 (문서 편집) [목차] == [[미합중국 해군]]의 군인, [[명예 훈장]] 수훈자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mmander_Bruce_McCandless%2C_USN.jpg]] 1911년 8월 12일 ~ 1968년 1월 24일 1911년 8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합중국 해군]] 장교로 활동하며 초대 해군참모총장 윌리엄 벤슨과 해군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의 부관을 지내고 구축함 USS 콜드웰 함장으로 해군 십자장을 받았던 바이런 매캔들리스(Byron McCandless).[* 미국 대통령기(flag)를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명예 훈장]] 수훈자이자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의원까지 지내는 윌리스 브래들리의 딸 수 브래들리와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낳았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아래의 우주비행사. 1932년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순양함에서 근무했다.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인디애나폴리스(CA-35)]]와 케이스(DD-370)에서 근무했고, [[과달카날 해전]]에서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했다. 이 당시 함교가 대파되어 함대 지휘관 대니얼 캘러헌 제독과 [[캐신 영]] 함장을 포함한 선임 장교가 몰살당한 뒤 침착하게 함정을 지휘하며 해전 승리에 기여, [[명예 훈장]]을 받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dm._E._J._King%2C_USN%2C_presents_the_Medal_of_Honor_to_Cdr._B._McCandless%2C_USN.jpg]] [[어니스트 킹]] [[해군참모총장]]이 명예 훈장을 걸어주는 모습. 이후 1944년에는 구축함 그레고리(DD-802) 함장이 되었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4대의 [[카미카제]] 자폭 공격을 견뎌내며 은성무공훈장을 추가로 받았다. 이후 1952년 9월 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고, 1968년 1월 세상을 떠난 후 애너폴리스에 안장되었다. [* 묘비에 철자가 잘못 새겨져서 해군사관학교가 비판받았다. McCandle'''s'''라고 적혔다.] == [[NASA]] 우주비행사 == [[파일:6Ktoao9.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Astronaut-EVA.jpg]]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 [[1937년]] [[6월 8일]] ~ [[2017년]] [[12월 21일]] 1937년 6월 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명예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던지라 사관학교 입학 자격이 보장되었고,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1958년에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존 매케인|존 매케인 3세]]와 동기이다. 이후 조종사가 되었고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 비행대 조종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위를 딴 뒤에는 [[NASA]] 우주인단 5기에서 [[밴스 브랜드]], [[조 엥글]], [[프레드 헤이즈]], [[켄 매팅리]] 등과 함께 선발되었다. 이 시절 우주비행사들 중 [[테스트 파일럿]] 경력이 없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아폴로 11호]]에서 [[닐 암스트롱]]이 처음 달에 발을 내딛을 당시 지상 연락관(일명 [[캡콤]])으로 활동했고, 이후 아폴로 지원팀에서 활동했으나, 아폴로 프로그램이 17호를 끝으로 달 탐사를 종료하며 끝내 달에 가지는 못했다. 이후 [[Skylab]] 프로그램에서 백업 승무원으로 활동한 뒤 여러가지 우주선 장비 개발에 참여했다. 셔틀 상단 로켓 Inertial Upper Stage, [[허블 우주 망원경|허블]]로 대표되는 우주 망원경 시리즈, 태양 탐사 위성 솔라맥스, 당초 [[미합중국 공군]]이 개발했다가 실제 쓰이지는 못했던 무선 EVA용 제트팩 Astronaut Maneuvering Unit(AMU)의 Manned Maneuvering Unit(MMU)으로의 개량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이들은 이후 매캔들리스가 실제 우주비행에 나설 때 수행한 임무가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STS-41-B_crew.jpg]] '''STS-41-B''' 챌린저 승무원 - 앞줄은 사령관 밴스 브랜드와 파일럿 후트 깁슨, 뒷줄의 MMU 짊어진 둘은 밥 스튜어트와 매캔들리스, 뒷줄의 흑인은 훗날 '''[[STS-51-L]]'''에서 발사 중 희생되는 로널드 맥네어. 1984년 2월 3일, 처음 우주비행사 선발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드디어 첫 우주 임무에 나섰다. 당초 붙었던 STS-11이란 미션 명칭이 [[NASA]]의 삽질 덕에 STS-41-B라는 기괴한 명칭으로 바뀐 이 미션은 통신위성 2기의 궤도 전개와 MMU의 첫 테스트를 실시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EVAtion_-_GPN-2000-001087.jpg]] 최대 거리에 도달한 그 순간. 이 사진은 너무 유명해져서 인류의 우주 진출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매캔들리스 본인은 바이저를 내리고 있었으니 이 사진은 자기 자신이 아닌 특정되지 않은 '인간'이 주인공이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 사진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데에는 불쾌감을 표했다. 2008년에는 영국 가수 [[다이도]](Dido)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3/36/Dido_Safe_Trip_Home.jpeg|Safe Trip Home 앨범 자켓]]에 이 사진이 무단 도용되자 고소까지 받았다. 이후 [[허블 우주 망원경]] 궤도 전개 미션인 STS-61-J 아틀란티스의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배정되었다가 [[STS-51-L]] 챌린저 폭발 참사로 모든 미션이 깡그리 취소되었다. 그러다 STS-61-J 미션은 사령관 [[존 영]]을 로렌 슈라이버로 교체하고 오비터도 아틀란티스를 디스커버리로 교체한 뒤 STS-31로 재배정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Sts-31_crew.jpg]] 뒷줄은 스티브 홀리, 매캔들리스, 앞줄은 [[찰스 볼든]], 로렌 슈라이버, 캐스린 설리번. == 사족 == 이렇게만 보면 매캔들리스라는 가문이 되게 명문가로 보일텐데, '''19세기 중반 서부개척시대에는 서부 이주민들을 벌벌 떨게 했던 무법자 갱단 두목'''의 이름이었다. 원래 가문 이름도 McCanles였던 것이 [[와일드 빌 히칵]]에게 풍비박산이 나며 생존한 가족들이 콜로라도로 이주한 뒤 McCandless로 이름을 고친 것이다. 이 1861년에 히칵에게 살해된 데이비드 콜버트 매캔리스(David Colbert McCanles)의 손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바이런 매캔들리스다. [[분류:동명이인]][[분류:미국의 군인]][[분류:미국의 우주 비행사]][[분류:1911년 출생]][[분류:1968년 사망]][[분류:워싱턴 DC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분류:2017년 사망]][[분류:보스턴 출신 인물]][[분류:미국해군사관학교 출신]][[분류:명예 훈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