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원종 (문서 편집) [[분류:1467년 출생]][[분류:1510년 사망]][[분류:순천 박씨]][[분류:조선의 공신]][[분류:조선의 무관]][[분류:영의정]][[분류:좌의정]][[분류:우의정]] [include(틀:역대 조선 영의정(중종-광해군))] ---- || '''{{{#f0ad73 박원종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역대 조선 정승(중종-광해군))] ---- [include(틀:조선 정국공신)] ---- [include(틀:조선 정난공신(중종))] ---- [include(틀:종묘 배향공신)] ---- [include(틀:조선의 역대 집권세력)]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60420, #b82642 20%, #b82642 80%, #960420)" '''[[영의정|{{{#fff 조선 영의정}}}]][br]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무열공(武烈公)[br]{{{+1 박원종}}}[br]朴元宗'''}}} || || '''출생''' ||[[1467년]]([[세조(조선)|세조]] 13년)|| || '''사망''' ||[[1510년]] [[6월 3일]][* [[율리우스력]] [[5월 24일]].] (향년 42 ~ 43세)[* [[연 나이]] 43세.][br](음력 [[중종(조선)|중종]] 5년 4월 17일)[* [[세는나이]] 44세.]|| ||<|2> '''재임기간''' ||제49대 영의정|| ||[[1509년]] [[11월 19일]][* [[율리우스력]] [[11월 9일]].] - [[1510년]] [[4월 23일]][* [[율리우스력]] [[4월 13일]].][br]{{{-2 (음력 [[중종(조선)|중종]] 4년 윤9월 27일 - 중종 5년 3월 6일)}}}|| || '''[[봉호|{{{#fff 봉호}}}]]'''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 '''[[시호|{{{#fff 시호}}}]]''' ||무열(武烈)|| || '''[[본관|{{{#fff 본관}}}]]''' ||[[순천 박씨]]|| || '''[[자(이름)|{{{#fff 자}}}]]''' ||백윤(伯胤)|| || '''부모''' ||부친 - 박중선(朴仲善)[br]모친 - [[양천 허씨]]|| || '''형제자매''' ||누나 - [[승평부대부인]][br]누나 - 신무정(辛武鼎)의 처[br]누나 - 이탁(李鐸)의 처[br]누나 - [[청주 한씨]] 한익(韓翊)의 처[br]누나 - 순천부부인(順天府夫人)[br]여동생 - 김준(金俊)의 처[br]여동생 - 부부인(府夫人) 박씨|| || '''부인''' ||{{{-3 정처}}} [[파평 윤씨]][br]{{{-3 후처}}} 미상|| || '''자녀''' ||장남 - 박운(朴雲) {{{-3 후처 소생}}}||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전기의 무신. 평양군 박중선의 외아들이자 [[성종(조선)|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처남이며 [[윤임]]과 [[중종(조선)|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외숙부이다. '''[[중종반정]]의 실질적인 기획자이고 사실상 반정의 [[주인공]]이었다.''' == 생애 == 부친은 박중선으로 박원종의 친할머니이자 박중선의 어머니는 [[태종(조선)|태종]]에 의해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한 [[세종(조선)|세종]]의 장인 [[심온]]의 딸이다. 즉, [[소헌왕후]]는 박원종의 할머니의 언니(이모할머니). 박중선 본인도 [[이시애의 난]]과 성종 즉위에 공을 세운 [[공신]]이자 [[병조판서]]로 군권을 쥔 거물이었으며 반란 토벌로 잔뼈가 굵은 무인이었다. 박중선 사후 박중선의 묘지명은 당대 명문장가였던 [[임사홍(조선)|임사홍]]이 지어주는데 훗날 아들 박원종에 의해 임사홍이 참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박원종은 부친을 닮아 무술에 뛰어나서 음서로 무관[* 때문에 같은 무관 출신인 [[유자광]]이 탄핵을 받아 궁지에 몰리자 박원종을 찾아가 '문관들이 무관들을 배척하려 하니 다음에는 당신 차례일 것이다'라며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물론 유자광이 [[무오사화]] 등으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게된지 오래인 것을 안 박원종은 이를 무시했다.]에 기용되었다.[* 활쏘기를 동네 푸줏간 주인한테 배웠다고 한다.] 1486년(성종 17년) 선전관으로 있을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내승으로 승진해 오랫동안 왕의 측근이 되었다. 박원종의 손윗누이는 [[성종(조선)|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정실인 승평부대부인 박씨인데, 성종이 형님의 처남이라는 인척관계로 박원종을 기용하여 중히 여겼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성종은 자신의 형임에도 불구하고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극도로 조심하면서 사는 월산대군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박원종의 다섯번째 누이는 윤여필과 혼인해 중종비 [[장경왕후]]와 [[윤임]] 남매를 낳았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중추부지사 겸 [[경기도]] 관찰사,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다음 평성군(平城君)에 봉해지고 도총부 도총관을 겸직하였다. 1506년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연산군을 폐위하고 [[신수근]], [[임사홍(조선)|임사홍]] 등을 제거하여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의 주도적 역할을 맡아 정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종종 즉위 후 출세일로를 걷던 박원종은 중중 3년인 1509년 [[영의정]]에 오르고[* 조선시대 무과 출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2명 중 1인이다. 나머지 한명은 [[신립]]의 아들이자 [[인조반정]]의 주역 중 한 명인 충익공 신경진(1575~1643). 다만 신경진은 영의정이 되고 불과 5일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평성부원군에 봉해졌지만 몇 달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원종의 큰 누이는 [[월산대군]]의 정실 [[승평부대부인]]이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연산군이 누이를 범한 것이 박원종이 반정을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연산군이나 중종반정 문서에 나와있듯이 이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 박원종의 또 다른 누이는 윤여필에게 시집을 가서 [[윤임]]과 [[장경왕후]]를 낳았다. 또 다른 누이는 [[제안대군]]의 후처이다. 다만 제안대군이 후처 박씨와 이혼하기 위해 그녀를 [[레즈비언]]이라고 모함한 후 일방적으로 쫓아냈다. 졸기에 따르면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집에는 뇌물이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궁궐에서 나온 이름난 창기들을 많이 차지하였으며 거처나 음식이 신하로서의 한도를 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반정에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애초에 연산군 때부터 별의별 추문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연산 9년에는 왕에게 하직한 다음 창녀와 사가에서 잔 것이 들통나 벌 주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는데 연산군이 전부 물리쳐서 넘어간 바 있다. 박원종에게는 적자가 없어 박원종이 죽은 후 박원종의 서자인 박운이 제사를 받들었는데[* 참고로 서자가 적자로 신분 세탁을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 마지막 방법은 역모를 막는 일이다.] 박운은 [[이항]]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첨을 했다는 혐의로 [[김안로]] 일파의 공격을 받아 유배를 갔다.[* 파직되어 고향에 가 있던 이항이 이 소식을 듣고는 분개하여 [[승정원]]으로 가서 억울함을 토로한 것을 보면 박운의 혐의는 김안로 일파의 무고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 역시 "이항의 탐욕스러움은 일세에 비할 자가 없다"고 까면서도 "박운에게 뇌물을 받은 일은 증거가 확실치 않다"고 기술하였다.] 반정 1등 공신 박원종의 제사를 받드는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정광필]]이 "박운을 선처해달라"고 청하였지만 중종은 거부하였다. 그러나 차라리 일찍 죽은게 다행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중종의 성향상 조광조, 김안로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죽이든 몰락시키든 했을것이다. 여러모로 [[김석주]]와 닮은점이 많은 인물. == 기타 == * 박원종의 행실과는 별개로 집안 자체는 어마어마했다. 할머니만 해도 소헌왕후의 여동생이었으며 위로 둔 3명의 누이는 모두 왕실과 관련이 있다. 큰 누이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연산군과의 [[야사(역사)|야사]]로도 유명하다.] 둘째 누이는 중종의 둘째 부인이자 [[인종(조선)|인종]]의 모친인 장경왕후의 어머니(순천부부인 박씨)[* 중종에게는 장모이자 인종에게는 외조모다.]. 넷째누이는 인수대비의 조카 한익과 혼인하였고, 막내누이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예종(조선)|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부인 박씨이다. * 박원종이 중종반정의 총대를 매었던 관계로 '''무려 300년 뒤'''인 [[순조]] 때에도 중종의 [[조강지처]]인 [[단경왕후]]를 내친 죄로 [[종묘]] [[배향공신]]에서 [[http://sillok.history.go.kr/id/kwa_12507018_002|쫓아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 가족 관계 == * 조부 : 박거소(朴去疎) - 지돈녕부사 * 조모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청천부원군 [[심온]](靑川府院君 沈溫)의 6녀 * 부 : 박중선(朴仲善)[* [[문종(조선)|문종]],[[세조(조선)|세조]]와는 사촌지간] * 모 : [[양천 허씨]](陽川 許氏) - 행호군 허균(行護軍 許稛)의 여식 * 누나 : [[승평부대부인]](昇平府大夫人 朴氏, 1455 ~ 1506) * 매형 :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 ~ 1488) * 누나 : [[순천 박씨]]((順天 朴氏, 1458 ~ ?) * 매형 : 선전관 신무정(宣傳官 辛武鼎) * 누나 :[[순천 박씨]](順天 朴氏, 1461 ~ ?) * 매형 : 사옹원봉사 이탁(司饔院奉事 李鐸) * 누나 : [[순천 박씨]](順天 朴氏, 1464 ~ ?) * 매형 : 군기시판관 한익(軍器寺判官 韓翊, 1460 ~ 1488) - 서원부원군 [[한확]](西原府院君 韓確)의 손자, [[인수대비]]의 조카 * 누나 : 순천부부인(順天府夫人, 1466 ~ ?) * 매형 : 파원부원군 윤여필(坡原府院君 尹汝弼, 1466 ~ 1555) * 외조카 : [[윤임]](尹任, 1487 ~ 1545) * 외조카 : [[장경왕후]](章敬王后, 1507 ~ 1515) * 여동생 : [[순천 박씨]](順天 朴氏, 1468 ~ ?) * 매부: 김준(金俊) * 여동생 : 부부인 [[순천 박씨]](府夫人 順天 朴氏, 1470 ~ ?) * 매부 :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 ~ 1526) * 본처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윤린(尹潾)의 딸, [[정현옹주]]의 손녀 * 후처 : 이름 미상 * 장남 : 박운(朴雲) == 대중매체 == * 1962년 2부작 영화 <[[연산군(1962)|연산군]]> & <[[폭군 연산]]>에서는 배우 [[김진규(배우)|김진규]]가 연기했다. * 1985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풍란에서는 배우 [[조경환]]이 연기했다. * 1995년 [[KBS]] 드라마 <[[장녹수(드라마)|장녹수]]>에서는 배우 [[이동준(1958)|이동준]]이 연기했다. * 1996년 [[KBS]] 드라마 <[[조광조(드라마)|조광조]]>에서는 배우 [[김병기(배우)|김병기]]가 연기했다. * 1996년 [[SBS]] 드라마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는 배우 [[김영석(배우)|김영석]]이 연기했다. 그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유명한 폐위 대사]]를 이 드라마에서 최초로 썼다. *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배우 [[차광수]]가 연기했다. *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배우 [[김영인(1940)|김영인]]이 연기했다. * 2003년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배우 [[이창환]]이 연기했다. * 2007년 [[SBS]] 드라마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배우 차기환이 연기했다. 이때 그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유명한 폐위 대사]]를 써먹었다. * 2011년 [[JTBC]] 드라마 <[[인수대비(드라마)|인수대비]]>에서는 배우 [[박수일]]이 연기했다. * 2015년 개봉한 [[영화]] <[[간신(영화)|간신]]>에서는 배우 [[조한철]]이 연기했다. * 2017년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배우 [[최대철]]이 연기했다. [[중종반정]] 후 권력으로 뇌물과 사치를 부리자 [[홍길동]]에게 혼쭐이 나고 이후 홍길동을 두려워하다가 급사한 걸로 나온다. * 2017년 [[KBS]]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는 배우 [[박원상]]이 연기했다. * 2022년 [[KBS]] 드라마 <[[붉은 단심]]>에서는 배우 [[장혁]]이 박계원이라는 이름으로 연기했다.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에선 제안대군을 추대하는 반란을 일으키나 진성대군인 주인공에 의해 민심확보에 실패하고 폭사한 뒤 효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