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경락 (문서 편집) [include(틀:스타판의 흐름)] ||<-2> '''{{{#373a3c,#ddd 前 스타크래프트 1, 2 프로게이머}}}''' || ||<-2> {{{#!wiki style="margin:-6px -10px -6px" [[파일:1289825462_1.jpg|width=100%]]}}} || || '''이름''' ||박경락(朴慶洛)|| ||<|2> '''출생''' ||[[1984년]] [[9월 19일]]|| ||[[경기도]] [[안성시]]|| || '''사망''' ||[[2019년]] [[7월 29일]] (향년 34세)||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혈액형''' ||[[B형]]|| || '''가족''' ||[[무매독자]][* 과일가게를 운영하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아버지에 관해선 알려진 게 없다.]|| || '''종교''' ||[[가톨릭|천주교]]([[세례명]]: 베드로)|| || '''소속''' ||'''[[웅진 스타즈|한빛 스타즈]]''' → [[Incredible Miracle|IM]]|| || '''주 종목''' ||[[스타크래프트]]|| || '''종족''' ||[[저그]]|| || '''ID''' ||Junwi_[saM][* [[삼국지]]에 나오는 그 [[전위(삼국지)|전위]]가 맞다.] → JunwiPrime → IMJunwiPirme[* 프라임을 치려 했는데 오타로 피르메가 되면서 결국 별명까지 피르메가 되어 버림.]|| || '''별명''' ||[[공공의 적]], 마사지 저그, 삼지안, 전지구적 재앙, 스2 악연류 원조||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486f97641ae9a.jpg]]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온게임넷]] [[옵저버(e스포츠)|옵저버]]였다. [[은퇴]] 이후에는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겸 게이머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GSL]] [[코드 A]] [[옵저버(e스포츠)|옵저버]]를 담당하기도 했다. == 특징과 경력 == 2002년 등장하며 날렸던 저그 유저 중 한 명이다. [[홍진호]],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 등과 함께 '[[조진락]]'이라는 별칭으로 묶여 불리기도 했다.[* 이후 '양박' 시대로 일컬어지는 저그의 전성기는 '[[변태준]]'([[변은종]]+[[박태민]]+[[박성준(1986)|박성준]])의 시기, 최근까지 이어지는 저그의 부흥기인 '[[마준동]]'([[마재윤|마모씨]]+[[김준영]]+[[이제동]])의 시기와 스타의 황혼기를 장식한 '[[이제동]] + [[3김저그]]'([[김정우(프로게이머)|김정우]]+[[김윤환(1989)|김윤환]]+[[김명운]]) 시기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네 시기 모두 한 명이 상대적으로 커리어가 달린다.] 주특기는 정신 없을 정도로 곳곳에 떨어지는 드랍으로, 이름과 조합된 [[별명]]인 '''경락 마사지 드랍'''은 아직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별명. 특히 당시 세군데에 동시에 떨어지는 럴커드랍으로 수 많은 테란을 압살했던 모습은 항상 테란들에게 무참히 짓밟혀온 저그들에게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박경락은 이처럼 역상성 종족인 테란전에서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자주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2년 갑작스럽게 등장해 굉장한 실력을 선보였고, 언급한대로 특히 테란 유저들을 압살하면서 그 이름을 날렸다. 파나소닉배 스타리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그 [[포스]]가 엄청났는데, 특히 테란전에서 그 스타일리쉬하고 강력한 경기력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8강 첫 경기에서 같은 저그유저인 홍진호에게 패했으나 테란 유저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베르트랑]]을 만나 특유의 동시 견제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1승 1패를 기록한 이후 당대 저그전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임요환]]에게 완벽하게 승리를 따내며 4강에 진출했다. 임요환 입장에서는 초반 [[치즈러쉬]] 이후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던 굴욕적인 경기였다. [[김태형(1973)|김태형]] 해설에게 "지금까지 봤던 저그 중 가장 테란전이 완벽한 저그"라는 찬사를 받았다. 옆에서 [[엄옹]]이 이런 찬사에 수긍을 했을 정도다. 물론 이는 이 선수가 [[테저전/스타크래프트|테저전]]만 특출나게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프전]]도 의외로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으며, 이렇게 해서 얻은 별명이 '''[[공공의 적]]'''이다. 이처럼 박경락의 전성기 [[임팩트]]는 골수 저그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오래 되지 않은 팬들은 갸우뚱하겠지만 조진락 트리오 중에서 순수 기량만큼은 박경락이 최고였다라고 꼽는 올드저그팬들도 생각보다 많다.[*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의 기량에 대한 [[재평가]]가 너무 먼 훗날에 이루어 져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전성기 시절 박경락은 정말 강했다.] 이재균 감독도 "[[박성준(1986)|최초의 저그 우승자]]는 박경락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부종족으로는 테란을 자주 플레이했다. 마이큐브 스타리그 4강에서 [[박용욱]]을 만나 [[패러독스(스타크래프트)|패러독스]]가 걸리자 테란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패배.[* 패러독스 맵을 보면 알겠지만, 저그로는 '''이길 수가 없다'''.] 문제는 게임 양상 특성상 주특기인 드랍이 거의 불가능한 [[저저전/스타크래프트|저저전]]에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던 [[저막]]이었다는 거고[* 통산 저그전으로 보자면 그리 약한 건 아니었지만, 당대에 같이 경쟁했던 최상위급 저그, 즉 홍진호와 조용호에게는 한없이 약했다. [[돌아온 뒷담화]] 울산투어편에서 [[엄재경|엄옹]]이 저그전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김명운을 인터뷰하면서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https://youtu.be/2OkN5egjNMc?list=PLWQeRMoEALvrHA69spvdjRDWJe_lnkNRo&t=1589|#]]], 그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자원 활성화가 되어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시점이 되면 특유의 경락 마사지로 이곳저곳 몰아치는 스타일이라, 그 이전 타이밍에 약점이 있었다. 결국 파나소닉 스타리그과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조진락]]의 다른 멤버인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와 [[홍진호]]에게 4강에서 연달아 패퇴했고,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는 프로토스인 [[박용욱]]을 만나 드디어 결승에 오르는가 했지만 박용욱의 [[하드코어 질럿]]러쉬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며[* 3경기가 그 유명한 [[패러독스]]인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하고라도 1,2경기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무너졌다. 특히나 2경기는 박용욱이 박경락의 본진 입구를 질럿으로 봉쇄하고 거의 감금조교하다시피 하며 관광당했다. 프로토스가 저그를 역대급으로 관광보낸 경기이다.] '''3연속 4강'''에 그치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파나소닉에서는 조용호에게 4강 2:3 패배, 3위 결정전에서 홍진호에게 1:3 패배로 4위를 했으며 올림푸스에서는 4강에서 재회한 홍진호에게 [[셧아웃(스타크래프트)|0:3 패배]]로 탈락하였다. 몇번 치루지도 않은 5전제 중에서 조진에게 5전제 사이클링 패배를 당할 만큼 이 2명에게 약했던 것. 이 정도면 저막으로 취급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다음 리그인 NHN 한게임배에서 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했으나 역시 저그인 [[박태민]], [[변은종]]에게 패하면서 탈락하고 만다.[* 변은종은 이때 박경락을 꺾고 첫 스타리그 진출만에 4강에 올랐으나 그 이후 그 역시 [[락라인]] 후배 회원이 되는 것에 그치고 만다.] 이어지는 듀얼 토너먼트에서 1경기에서 [[김정민]]에게, 패자전에서 [[변길섭]]에게 패배하며 탈락한다. 이후 이런저런 이유[* [[카더라]]에 따르면 3번이나 결승 문턱에서 좌절한 이 성적 때문에 벽을 느낀 나머지 자존심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로 연습량이 떨어지면서 팀을 나가니마니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중간 프로리그에선 한빛 스타즈의 [[광안리]] 우승 선봉장 역할까지 했으나, 개인리그에선 다시 저때의 포스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특히 2004 프로리그 1라운드 결승전 2주 전에는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자신을 키워주신 홀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쓰러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결승전 자체는 출전해서 승리했다.] 그러다가 [[2006년]]과 [[2007년]]에 서바이버 리그 예선을 통과하며 올드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역시나 시간의 무게는 무거웠다. 2006년엔 1라운드는 통과했지만 2라운드에서 [[변형태]]에게 무너졌고, 2007년엔 [[임요환]]의 서바이버리그 포기로 한번만 이기면 MSL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2패로 탈락했다. 게다가 손목 부상까지 겹쳐 결국 2008년 조용히 프로게이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온게임넷의 옵저버로 활동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10년 8월 29일, GSL 시즌1 본선에 진출했다. 세팅 때문에 경기를 연기하고도 [[김경수(프로게이머)|김경수]][* 리갈마인드.] 선수에게 2:0으로 무난하게 발리고 탈락해서 까였다. 이후 시즌2에서는 아예 예선도 못뚫었다. 예선을 [[광탈]]시켜준 게 참고로 김경수. 2011년 1월 31일,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582997&board=&category=13438&subcategory=&page=1&best=&searchmode=&search=&orderby=&token=|#]] [[GSTL]] Feb. 결승에서 [[나도현]] 선수에게 패했다. 하여튼 팀은 이겼다. 2011년 가을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가 해체되면서 게이머 협의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코드A 예선을 뚫는 것도 시원치 않자, 이듬해인 2012년에 조용히 은퇴했다. 그리고 [[곰앤컴퍼니|곰TV]]에 입사해 [[HOT6 GSL Season 1]]부터 코드A 게임연출(옵저버)을 맡았다. == 주요 기록 == [include(틀:역대 OSL 4강진출자)] * 2002년 [[2차 GhemTV 스타리그]] 준우승 *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2002년 KPGA 투어 4차 리그]] 16강 *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2002년 파나소닉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 4강에서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에게 2:3 패배] (vs. [[홍진호]] 1:3) *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2003년 올림푸스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 4강에서 [[홍진호]]에게 0:3 패배] (vs. [[임요환]] 1:3) * 2003년 [[KT-KTF 프리미어 리그]] 초청 *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2003년 마이큐브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4강에서 [[박용욱]]에게 0:3 패배] (vs. [[박정석]] 3:2) *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2003년 NHN 한게임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2003년 [[팀리그#s-2.1.1|계몽사배 KPGA 팀리그]] 4위 * 2003년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우승 * 2003년 [[팀리그#s-2.1.2|라이프존 KPGA 팀리그]] 준우승 * 2004년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3위 * 2004년 [[팀리그#s-2.1.3|LG IBM MBC GAME 팀리그]] 4위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우승''' * 2004년 [[팀리그#s-2.1.4|Tuscon MBC GAME 팀리그]] 4위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공동 3위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우승'''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4위 * 2005년 제1회 [[KeSPA Cup]] 준우승 주목할 만한 것은 '''3시즌 연속 4강'''이었다는 것이다. 3시즌 연속 '4강 이상'을 달성한 게이머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딱 4강' 에서 멈춘 게이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물론 [[MBC GAME 스타리그]]까지 합쳐도 한명도 없는 진기록이었다. 이 때문에 [[락라인]]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 전적 == ||<-4> '''{{{#ffffff 박경락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white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white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 vs 테란 || 29전 16승 13패 (55.2%) || 13전 6승 7패 (46.2%) || 42전 22승 20패 (52.4%) || || vs 저그 || 22전 10승 12패 (45.5%) || 6전 1승 5패 (16.7%) || 28전 11승 17패 (39.3%) || || vs 프로토스 || 17전 8승 9패 (47.1%) || 2전 1승 1패 (50.0%) || 19전 9승 10패 (47.4%) || || 총 전적 || 68전 34승 34패 (50.0%) || 21전 8승 13패 (38.1%) || 89전 42승 47패 (47.2%) || == 사망 == GSL 옵저버를 그만 둔 이후 별다른 근황이 전해지지 않다가[*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사망 1년 전에는 자동차 딜러로 일했다고 했으며, 자동차 딜러를 그만둔 후에는 [[위메이드 폭스|팬택]] 출신 김상우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채용 공고글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https://lostarks.tistory.com/534|#]]] 2019년 7월 29일에 본인상으로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https://sports.v.daum.net/v/20190730181203778|#]] 자세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인 및 e스포츠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자살|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전해졌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39806|#]] 발인은 7월 31일[* 여담으로 이 날은 스타크래프트 2에 나오는 [[도니 버밀리언]]의 성우인 [[박일(1946)|박일]]이 세상을 떠났다.]에 이루어졌으며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스타 팬들은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애도를 표했다. 그의 빈소에는 현재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고 있는 옛 동료이자 후배인 [[김명운]], [[임진묵]], [[김승현(프로게이머)|김승현]]이 조문하러 갔다고 그들이 언급했으며, 임진묵에 의하면 [[김인기(프로게이머)|김인기]]도 조문했다고 한다. 또한 같은 팀에 속했던 [[강도경]][* 특히 강도경은 [[kt 롤스터]] 코치 시절 [[우정호]]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ttps://www.instagram.com/p/B0kbynMgPjw/|추모의 글을 남겼으며, 고인이 안치된 곳을 안내]]해주었고, 박경락과는 다른 팀이었지만 동갑내기였던 [[이윤열]]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ttps://www.instagram.com/p/B0izmPRhACr/|비통하고 허망하다는 추모의 메세지]]를 남겼다. 특히 이 날은 박경락의 이름이 네이버와 카카오 실시간 검색어에 꽤 오랫동안 상위권을 점하면서 그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 기타 == * 한빛 스타즈의 올드 게이머인 만큼, [[이재균(e스포츠)|이재균]] 감독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후반기부터의 재기에도 이재균 감독의 힘이 많이 보태졌다고 하며, 온게임넷 옵저버 자리에 들어갈 때도 이재균 감독의 주선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재균 감독은 그가 사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핀 사건]]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 * 박경락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맹위를 떨쳤던 [[3대토스]] 게이머 중에서도 [[강민]]과 [[박정석]]에게 유달리 강했었다. 다만 [[박용욱]]에게는 매우 약했다. [각주] [[분류:박경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