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트비히 3세 (문서 편집) [[분류:1845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비텔스바흐 가문]][[분류:바이에른 국왕]][[분류:뮌헨 출신 인물]][[분류:망국의 군주]][[분류:바이에른 왕위 요구자]] [include(틀:역대 바이에른 국왕)] ---- || '''{{{#fff 루트비히 3세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 [include(틀:역대 바이에른 왕국 왕위 요구자)] ---- }}} || ---- ||<-2><#fff> {{{#0098d4 '''바이에른 왕국 제6대 국왕[br]{{{+1 루트비히 3세}}}[br]Ludwig III'''}}}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Kingludwig3bavaria.jpg|width=100%]]}}} || || '''이름''' ||루트비히 레오폴트 요제프 마리아 알로이스 알프레트[br](Ludwig Leopold Joseph Maria Aloys Alfred)|| || '''출생''' ||[[1845년]] [[1월 7일]][br][[독일 연방]] [[바이에른 왕국]] [[뮌헨]]|| || '''사망''' ||[[1921년]] [[10월 18일]] (향년 76세)[br][[헝가리 왕국(1920~1946)|헝가리 왕국]] 사바르|| ||<|2> '''재위''' ||<#E7E7E7,#2D2F34>[[바이에른 왕국]]의 왕|| ||[[1913년]] [[11월 5일]] ~ [[1918년]] [[11월 7일]]|| || '''배우자'''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 테레제[* [[모데나 레조 공국]]의 마지막 공작 [[프란체스코 5세]]의 조카, [[알폰소 12세]]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부언니다.][br],, (1868년 결혼 / 1919년 사망) ,,|| || '''자녀'''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루프레히트]], 아델군데, 마리아, 카를, 프란츠, 마틸데, 볼프강, 힐데가르트, 노부르가, 빌트루트, 헬름트루트, 디틀린데, 건델린데 || || '''아버지''' ||[[루이트폴트 폰 바이에른]]|| || '''어머니''' ||[[아우구스타 페르디난다|오스트리아의 아우구스테 페르디난데]][*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2세]]의 장녀다.]|| || '''형제'''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레오폴트]], 테레제, 아르눌프|| || '''종교''' ||[[로마 가톨릭]] || [목차] [clearfix] == 개요 ==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국왕. == 생애 == 바이에른의 섭정을 역임한 [[루이트폴트 폰 바이에른|루이트폴트 왕자]]와 [[아우구스타 페르디난다|토스카나의 아우구스타 페르디난다]] 부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의 사촌인 [[오토(바이에른)|오토 국왕]]이 정신 질환으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면서 그의 아버지인 루이트폴트가 섭정 역할을 수행했으며, 1912년에 루이트폴트가 사망한 이후에는 루트비히 본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1913년 11월 4일에 바이에른 왕국의 헌법이 개정됐는데, 국왕이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10년 이상에 걸쳐 지속된 경우에는 섭정이 새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다는 조문이 추가된 것이다. 그에 따라 오토는 폐위되었으며, 루트비히는 섭정에서 국왕으로 신분이 올라가 루트비히 3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즉위한 지 불과 5년 후인 1918년에 바이에른 왕국이 속해 있던 [[독일 제국]]이 [[독일 11월 혁명]]으로 무너졌으며, 그에 따라 바이에른 왕국을 포함한 독일 제국의 구성국들이 모조리 멸망하고 말았다. 그에 따라 루트비히 3세는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 되었다. 그 해 11월 13일에 루트비히 3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항복 문서에 독일 제국 대표로 서명했다. 이듬해인 1919년에는 [[리히텐슈타인]]의 수도인 [[파두츠]]를 거쳐 [[헝가리 왕국(1920~1946)|헝가리]]로 망명했으며, 2년 후인 1921년에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 후손 ==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테레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4남 9녀에 달했고, 그 중 장성한 것은 3남 7녀였다. 현재 그의 친증손자인 [[프란츠 폰 바이에른]]이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란츠에게는 자녀가 없으므로 남동생인 막스가 후임 수장이 될 예정이다. 그러나 막스 또한 딸만 5명이고[* 그 중 장녀가 [[리히텐슈타인]]의 공세자비이다.] 아들이 없으므로, 비텔스바흐 가문의 [[살리카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프란츠와 막스의 육촌형제인 루이트폴트[* 루트비히 3세의 3남 프란츠 왕자의 손자다. 루이트폴트의 어머니가 프란츠와 막스의 고모이기 때문에, 프란츠와 막스의 고종사촌이기도 하다.]가 막스의 뒤를 이어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