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렌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from=로타링기아\, 로트링겐, other1=공국, rd1=로렌 공국, other2=역사적 지명, rd2=알자스-로렌, other3=프랑스의 전차, rd3=로렌 40t, other4=인명, rd4=로렌(인명))] [목차] [[파일:로렌지도.png]] [[프랑스어]], [[영어]]: Lorraine [[독일어]]: Lotharingen 로렌어: Louréne 로렌 프랑크어: Lottringe == 개요 == [[파일:2000px-로렌기.png|width=200]] 로렌 지역의 국기. [[프랑스]]의 옛 [[지명]]이자 옛 [[레지옹]].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지방이었다. 현재는 [[상파뉴]], [[알자스]]와 함께 [[그랑테스트]] 레지옹을 이루고 있다. 과거 로렌의 데파르트망들은 아래와 같다: * [[모젤]] * [[뫼즈]] * [[보주(프랑스)|보주]] * [[뫼르트에모젤]] 수도는 [[메츠]]였으며 지역 인구는 [[2020년]] 기준 2,349,816명, 그리고 면적은 23,547 제곱킬로미터이다. == 역사 == 로트링겐 혹은 로렌이라는 지명은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의 장손 [[로타리우스 1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영지에 붙여진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긴 역사 동안 로트링겐(로렌)이 지칭하는 범위는 점차 축소되었다. === [[로마 제국]]과 [[프랑크 왕국]] === [[로마 제국]]의 당도 이전 로렌도 서, 중부 유럽의 대다수와 같이 [[켈트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알자스]]와 비슷한 시기에 켈트족의 치하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이 당도한 것은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이후였고 로마 제국 치하에 오늘날 [[메츠]]와 [[베르됭]]과 같은 도시들의 모태가 되는 정착지가 생겨났다. 이후 [[훈족]]의 침공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자 [[프랑크족]]이 오늘날 로렌 지역을 차지하여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을 수립하였고 이후 [[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제국이 분할되자 로렌은 [[중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중프랑크 왕국은 이후 더욱 분할될때 로렌은 로타링기아 왕국의 일부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로타르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로타링기아'라는 명칭은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 된다. 참고로 이 '로타링기아 왕국'은 현대 로렌 뿐만이 아니라 [[저지대 국가]]에서 [[이탈리아 반도]] 북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 로타링기아는(그 안 [[로렌 공국]]과 함께) 이내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독일 왕국]]->[[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 [[신성 로마 제국]]의 [[로렌 공국]] (959년 - 1766년) === [[로렌 공국]] 문서 참조. === 근대 === [[1737년]], [[프랑스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거래로 프랑스가 [[로트링겐 공국]]([[로렌 공국]]) 공작 [[프란츠 1세|프란츠 슈테판]]([[프란츠 1세]]|프랑수아 에티엔)과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로트링겐 공국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으로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넘어갔다. [[로렌 공국]]은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 사후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프란츠 1세]]는 [[대토|공국을 내준 보상]]으로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작위)|대공]]이 되었다. [[로렌 공국]]의 프랑스 합병 이후 이 지역에서는 [[프랑스/문화|프랑스화]]가 진행되었으며 [[1769년]]에는 대학교가 세워지고 [[낭시]]와 생디에는 주교좌가 되어 프랑스에 일부가 되어 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지역들이 뫼즈, 모셀, 메르테, 그리고 보주 데파르트망들로 행정 개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시기 [[1790년]]에는 로렌의 대표들이 로렌에 독일계 자치 데파르트망들의 수립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이후 [[1871년]]까지 로렌의 역사는 프랑스 다른 지역들의 역사와 함께 흘러갔다.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독일로 넘어간 로렌 지역의 이 시기 역사, rd1=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알자스-로렌 지도.png|width=100%]]}}} ||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전의 데파르트망 ||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 제2제국]]이 패전하고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되자 로렌의 일부[* 뫼르트 일부와 모젤 대부분]는 신생 [[독일 제국]]에 할양되고 남은 뫼르트와 모젤 데파르트망은 [[뫼르트에모젤]](뫼르트와 모젤) 데파르트망으로 재구성되었다.[* 뫼르트에모젤 데파르트망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데파르트망으로 유지되고 있다.] 보불전쟁 직후, 할양된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에서는 프랑스 국적을 유지하고자 한 [[프랑스인]]들이 추방되어 로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메스(프랑스)|메츠]]에서만 약 2만명이 떠났으며 이 시기 [[낭시]]는 인구를 두배로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로렌은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서부전선의 참호선이 로렌을 가로질렀고 [[베르됭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투들도 로렌 위에서 일어나면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 이러한 피해의 기억 때문인지 전후 [[전간기]]에 수복된 로렌의 독일-프랑스 국경에는 [[마지노선]]이 로렌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구축되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가 순식간에 항복하면서 [[1940년]]에 로렌은 [[알자스]]와 함께 [[나치 독일]]에 병합되었다. 이 결과로 병합된 모젤 데파르트망의 주민들은 나치 독일에 의해 징집당했다. 그리고 로렌은 [[1944년]], [[1945년]]이 돼서야 해방되었다. === 현대 === 전후 로렌은 빠른 속도로 재건되어 20년간의 전후 프랑스 경제의 황금기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의 과실을 톡톡히 누렸다. 과거 로렌을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로 만들었던 로렌의 지하자원은 로렌을 프랑스 경제 제3의 축을 구성하게 만들었고 프랑스의 다른 산업 강세 지역들과 같이 인구학적 변동을 겪게 된다. 특히 이 당시 [[폴란드]]와 [[이탈리아]]에서 이민자들이 와 정착하게 되면서 인구도 가파르게 성장했었고, 이 지역의 강한 경제를 대변하듯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의 두번째 연선이 놓은 곳도 로렌을 거쳐 [[파리(프랑스)|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또한 [[알자스]]와 로렌의 철강과 [[독일]] [[라인란트]]의 석탄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와 후신인 [[유럽 공동체]], 단일 시장을 통한 [[베네룩스]]와 [[독일]]과의 무역으로 로렌은 톡톡히 이득을 보았다. == 경제 == 위의 지하자원에 대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로렌은 산업활동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다만 현재는 광업이 약세를 띄면서 전자제품 등의 생산으로 경제를 재구성해나가는 추세에 있다. 또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독일]]을 접하고 있는 위치에서 알 수 있듯 이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이득을 무리는 지역이다. 로렌의 RGDP는 440억 [[유로]]로 프랑스 GDP의 3.4%에 달하며 ([[201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을 기준으로) 26개 레지옹 중 8위에 올랐다. == 지리 ==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3개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을 접하는 레지옹이었다. 지역 대부분이 파리 분지에 들어가며 [[뫼즈 강]]과 보주 산맥이 지난다. === 교통 ===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이며 경제적으로 강세를 띄는 지역인 만큼 교통의 요지이다. 프랑스의 2번째 고속선인 LGV est (유럽고속선 동부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잇는다.)이 로렌을 지나며 A31과 같은 [[오토루트]]도 로렌을 지난다. 항공교통으로는 [[메츠 낭시 로렌 공항]]이 있다. == 언어와 문화 == 로렌은 알자스와 다르게 상당히 프랑스화 되었지만 한때 독일에 재편입되었던 모젤 데파르트망에서는 독일어 계통의 언어인 로렌 프랑크어도 (알자스의 알자스어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수 쓰이고 로렌의 프랑스어 역시 독일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로렌어'라 불리는 지역의 사투리가 존재한다. 다만 [[프랑스의 지방 언어 문제|프랑스의 다른 지역 언어들과 같이]] 대부분 표준 프랑스어로 대체되어 로렌 주민의 대다수는 표준 프랑스어를 유창히 구사한다. == 주요 도시들 == * [[메츠]] - 주도였고 로렌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 [[낭시]] - 역사적으로 로렌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과거 [[로트링겐 공국]]의 수도였다.] [[메츠]]가 독일로 넘어간 후 [[보불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주도로 기능했다. * [[에피날]] * [[베르됭]] * [[바르르뒤크]] * [[뤼네빌]] == 출신 인물 == ★표시는 모젤 데파르트망[* [[알자스-모젤]]의 일부로 여겨지는, 1871년 독일에 합병된 지역]이 출생지인 인물. * 성녀 [[잔 다르크]] - 그녀가 전장에서 사용했던 십자 문양은 '로렌의 십자'로 알려져 [[자유 프랑스]]가 상징으로 쓰고 다녔다. * [[샤를 메시에]] * [[니콜라 빌렘]] 신부 - 안중근 토마스 의사 및 그의 집안과 친밀했던 프랑스인 신부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할 때 고해성사를 집전해 준 신부이다.(★) * [[앙리 푸앵카레]] * [[에밀 뒤르켐]] - 사회학자. 성이 독일식인 이유로, 이 양반의 이름을 프랑스식인 뒤르켕으로 부를 것이냐 독일식인 뒤르카임으로 부를 것이냐를 가지고 한국 사회학계가 미친 듯이 싸운 적이 있었다. * [[에밀 베낭트]] - [[프랑스]]의 축구선수.(★)[* 출생 당시에도 독일령이었다] * [[파트리샤 카스]] - [[샹송]] 가수(★) * [[스트로브-위예]] 중 장 마리 스트로브 - 스트로브는 [[메스(프랑스)|메스]] 출신으로 국적은 프랑스지만, 독일에서 활동을 주로 했다. (★) 반대로 동반자였던 위예는 파리 출신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알자스-로렌, version=477)] == 대중 매체에서 == *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소재가 되었던 사건 자체는 로렌과 알자스가 둘 다 독일제국의 영토가 되었던 것에서 비롯한다. ~~역사왜곡이지만~~ [[분류:프랑스의 역사]][[분류:프랑스의 옛 레지옹]][[분류:유럽의 지명]][[분류:2016년 폐지된 행정구역]][[분류:그랑테스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