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기현 (문서 편집) ||[[파일:external/www.mookas.com/dokihen_m.jpg]]|| || 도기현都基鉉 || || 1961년 ~ || [목차] [clearfix] == 개요 == [[결련택견협회]]의 회장. == 상세 ==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여 [[태권도]], [[쿵후]], [[검도]] 등을 수련했고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진학 후 [[태껸]]에 관심을 가지다가 우연히 미용실에서 [[송덕기]]에 대한 잡지 인터뷰 기사를 발견하고 찾아간 것이 태껸과의 인연의 시작이라고 한다. 태껸에 대해서 막연하게 신비한 무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찾아갔다가 전혀 신비스럽지 않은(...) [[송덕기]]의 모습과 태껸에 실망도 했으나 오래도록 염원하던 태껸을 조금만 더 하자 조금만 더하자를 반복하다가 오늘날도 조금만 더 하고 있다(...) 어쨌든 택견계승회라는 단체도 결성하고 총무도 맡고 또 대학생의 신분이다보니 거의 날이면 날마다 송덕기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현재 메이저 택견협회의 수장들 중 가장 [[송덕기]]의 증언과 기술을 많이 알고 있다. [[신한승]]이 충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배우고 또 다른 전통무술을 찾아서 전국을 누빈 것과는 달리 측근에서 송덕기에게 배웠기 때문에 정통성 면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거기서도 [[한복]]을 입고 태껸수련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무술 세미나가 열렸고 거기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당시 세미나 비용인 현찰 100달러라는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중 본인에게 오히려 태껸의 시범을 부탁하여 참가했다. 타 무술 고단자들의 시범에 잠시 주눅이 들기도 했으나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태껸에 대해 뭘 알겠어?'하며 시범을 보였고 그 뒤 관심을 받게 되었다. 독특한 굼실거림을 항상 유지하면서도 날카롭고 빠르게 나가는 아랫발질과 윗발질, 그리고 태질로의 연결은 다른 무술들이 보았을 때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무술들은 하체를 굳건하게 하고 그 힘을 끌어올려 상체로 기술을 풀지만 태껸은 오히려 품밟기를 통해서 그런 하체를 공격하면서도 공방에 유용할 수 있으니 타 무술 고단자들이 보기에는 완전한 역발상의 무술이었던 것이다. 길거리 시범이었다면 구경꾼들이 보는 눈이 없어 오히려 이런 반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시범 뒤 자신감이 붙어서 태껸 클럽도 결성하는 등 활발하게 태껸을 전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각성하고 자신이 지도하다가 모르는 점, 궁금한 점을 잔뜩 적어서 유학에서 돌아가자마자 [[송덕기]]에게 득달같이 달려갈 예정이었으나 이 와중에 송덕기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와해될 뻔한 택견계승회, 그리고 송덕기가 유명을 달리 하고 [[신한승]]이 개조한 태껸만이 마치 진짜 [[태껸]]이라고 남은 모습을 보고는 태껸인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결련택견계승회를 결성해 오늘날 [[결련택견협회]]까지 이르고 있다. 언론매체에는 진정한 [[송덕기]]의 수제자, 태껸의 진정한 적통자 등으로 나가고 있으나 그것은 기사일 뿐이고 막상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해 보면 본인도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한풀]]이라는 단체에서 태껸에 대한 책([[태견]])을 낸다고 하자 오히려 "내가 배우지 못한 스승님의 기술들이 있을 수 있으니 관심을 가져봐라."라고 당시 겨울방학 대학생 집중훈련시간에 말하기도 했다.[* 다만 2002년 당시 책이 나왔을때만 그렇고 현재는 매우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다만 본인이 태껸의 가장 기본적인 몸짓이 되는 품밟기는 제대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 때 주변의 다른 무술인들이 하도 "도기현은 송덕기가 다 늙었을 때 배워서 [[태껸]]을 잘못 배웠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서 광복 후 처음 송덕기에게 태껸을 배웠던 [[박철희]], [[김병수(태권도)|김병수]], 임창수를 만나 자신의 몸짓이 젊은 시절 송덕기의 몸짓과 같다는 증언을 얻었다. 송덕기에 대한 애착은 세 단체 수장 중에 으뜸이라고 할만하다. 송덕기의 [[사망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점을 발견하여 수정한 것도 그이며 또한 송덕기의 이장을 맡아서 한 것도 도기현이다. 또 매년 송덕기 추모행사를 하고 가장 메이저 대회이자 권위있는 대회를 [[송덕기 옹 추모대회|추모대회]]로 할 정도. 2005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택견 수련터인 [[감투바위 수련터]]를 복원했다. 언론매체의 가감이 없는 무진이 진행했던 도기현과의 [[http://moozine.tistory.com/561|인터뷰]]. [[분류:택견]][[분류:1961년 출생]][[분류:연세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