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원군(영화) (문서 편집) ||<-5><#EDD200> {{{+1 '''{{{#000000 역대}}}''' [[대종상|[[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width=120]]]]}}} || ||<#FFFFFF,#191919><-5> [[파일:daejongawards.png|width=50]] || ||<#EDD200><-5> {{{#000000 '''최우수작품상'''}}} || || 제6회[br]([[1967년]]) || {{{+1 →}}} || '''제7회[br]([[1968년]])''' || {{{+1 →}}} || 제11회[br]([[1972년]])[* 제8, 9회는 중단, 제10회는 수상작 없음.] || || [[귀로(영화)|귀로]] || {{{+1 →}}} || '''대원군''' || {{{+1 →}}} || [[의사 안중근]] || ||<#EDD200><-5> || ||<-2> {{{+1 '''대원군'''}}} (1968)[br]大院君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대원군 포스터.jpg|width=100%]]}}} || || '''감독''' || [[신상옥]] || || '''원작''' || 유주현 《대원군》 || || '''각본''' || 이상현 || || '''기획''' || [[신상옥]] || || '''제작''' || 이수길 || || '''주연''' || [[신영균(배우)|신영균]], [[김지미]] || || '''촬영''' || 최승우 || || '''조명''' || 김대진 || || '''편집''' || 오성환 || || '''음악''' || 정윤주 || || '''미술''' || 정우택 || || '''제작사''' || 안양필림 || || '''개봉일''' || [[1968년]] [[4월 11일]] || || '''개봉관''' || 국제극장 || || '''관람인원''' || 98,000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유주현의 [[대하소설|대하역사소설]] 〈대원군〉을 원작으로 하는 [[신상옥]] 감독의 1968년 개봉 영화. 원작 소설은 1965년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 1967년 단행본으로 나온 후 곧장 영화화되었다. 광복 후 최초의 [[동시녹음]] 작품이다. 당시 제작진은 신축된 안양촬영소에서 나그라 녹음기와 지향성 마이크로 동시녹음 작업을 했다고 한다. 광복 전에는 일본인과 공동작업으로 동시녹음된 작품인 [[최인규(영화 감독)|최인규]] 감독의 《[[수업료(영화)|수업료]]》가 있었다. 참고로 동시녹음 두번 째 작품은 [[김수용(영화감독)|김수용]] 감독의 《[[봄·봄(영화)|봄·봄]]》. == 출연진 == * [[신영균(배우)|신영균]] - [[흥선대원군|이하응]] 역 * [[김지미]] - 추선 역 * [[최남현]] - [[김좌근]] 역 * [[허장강]] - 김병기 역 * [[박암]] - [[김병국]] 역 * [[김동원(1916)|김동원]] - 정원용 역 * 윤인자 - 나합 역 * 송미남 -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역 * 김동훈 - [[철종(조선)|철종]] 역 * 방수일 - [[경원군(1842)|이하전]] 역 * 이풍구 - [[고종(대한제국)|명복]] 역(아역) * [[양훈(동명이인)#s-2|양훈]] - 황유복 역 * [[강계식]] - [[조두순(조선)|조두순]] 역 * [[조항(배우)|조항]] - 이장염 역 * 지방열 - 김문근 역 == 줄거리 ==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지 5백년, 이조 말기에 국운이 쇠퇴해지자 [[김좌근]]([[최남현]])을 위시한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가 국정을 좌우하게 되었다. 쇠퇴한 왕실엔 손도 쇠하여 [[효명세자|익종대왕]]의 후계로 왕가의 종친인 흥선군 [[이하응]]([[신영균(배우)|신영균]])까지도 김씨 일파에 의한 탄압의 대상이 된다. 흥선군은 그 탄압과 제거의 음모를 피하기 위해 방종과 폭주 등으로 바보짓을 가장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1863년 갑자기 [[철종(조선)|철종]](김동훈)이 죽자 흥선군은 자기의 둘째 아들 [[고종(대한제국)|명복]](이풍구-아역)으로 하여금 왕통을 잇게 하는 데에 성공한다. 명복을 왕위에 영봉한다는 전지를 들고 온 자는 흥선군 앞에 꿇어 엎드려 사뢴다. "이제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리실 분은 국태공이신 대원위대감이십니다." 화면은 다음 날 아침 명복과 흥선군이 대궐로 봉영되어 가는 장면에서 대미를 고한다.[* 출처 〈여원〉 1968년 2월호] == 수상 == * 1968년 제7회 [[대종상]] 작품상 · 감독상([[신상옥]]) · 녹음상(유창극) · 미술상(정우택) * 1969년 *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신영균(배우)|신영균]]) · 여자 최우수연기상([[김지미]]) * 제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신영균(배우)|신영균]]) [[분류:한국 영화]][[분류:1968년 영화]][[분류: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분류:소설 원작 영화]][[분류:한국의 전기 영화]][[분류:한국의 역사 영화]][[분류:조선/창작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