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다이즘 (문서 편집) [include(틀:미술사/모더니즘)] ---- [include(틀:미술사/서양)] [목차] [clearfix]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다다이즘/Dadapoem.gif|width=450]]}}}|| ||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작품 || 1920년대에 벌어진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 == 주요 개념 == 다다(dada)라는 어원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 독일어로 '취미' 라는 뜻인데 선구자였던 후고 발이 '''칼로 독일어 사전을 찔러서''' 명칭을 무작위로 선택했다는 설이 있고,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를 가리키는 말이나, 작가들의 태도 그 자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다다이즘의 어원은 '까까', '빠빠', '쬬쬬' 처럼 [[옹알이|애들이나 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 정설로 꼽힌다. 서양 아이들이 다다다 하고 옹알이를 하는 소리의 그것이다. 한마디로 유아적인, 유치한 단어라는 이야기. 이런 단어로 불리게 된 건, 다다이즘이 ‘무의미함의 의미’를 표현하는 사조였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dada'라는 단어를 통해 카모폴라쥬를 하거나 무의식이나 허무주의를 나타냈다. 쉽게 말해 기존 예술을 그냥, 생각 없이, 뒤엎고, 가지고 노는 게 '다다이스트'들의 목적이었다. == 역사 == 다다이즘 역시 미래주의처럼 조형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의 영역까지 포함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처음에 다다이즘은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 2월 독일 출신 작가 겸 연출가인 후고 발(Hugo Ball, 1886 ~ 1927)이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란 주점을 열고, 루마니아계 프랑스인 [[시인]]인 트리스탕 차라(Tristan Tzara, 1896 ~ 1963), 독일 출신 시인 카를 빌헬름 리하르트 휠젠베크(Carl Wilhelm Richard Hülsenbec, 1892 ~ 1974), 프랑스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 장 아르프(Jean Arp, 1886 ~ 1966) 등과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상한 시낭송 대회를 하면서 형식에 벗어난 예술 형식을 실험하고 예술 자체의 정의와 이해의 확장에 힘쓰는 '느슨한 단체'를 구성했다. 이 초기 다다 운동의 참여자들을 오늘날에는 취리히 다다라고 부른다. 이 카바레 볼테르에 모여 놀던 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을 피해 취리히로 망명 온 사람들이었다. 말이 [[망명]]이지 사실 [[전쟁]]과 [[징집]]을 피해 [[도피]]한 사람들이다.[* 이들뿐 아니라 [[블라디미르 레닌]] 등 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사람들도 취리히에 망명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니 기존 전통, [[질서]], [[국가]] 등에 얼마나 부정적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1차 세계대전 시기 이후 인간 이성에 대한 환멸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그렇게 잘났다 자부했던 인간과 이성이 이뤄낸 결과란 게 [[기관총]]이나 [[독가스]] 같은 대량학살무기와 [[참호전]]으로 수백만 군인들이 죽어나가는 꼴이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웃고 떠드는 게 사실 더 정신나간 일이었을 것이다. == 다다이즘의 의의 == 다다이즘은 [[모더니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예술관으로,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과거의 예술과 단절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다다이즘은 '파괴'에 중점을 두었던 사상으로, 그 당시의 관습적인 문화적, 교육적 표준을 거부하고 공격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극렬한 지지자들은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과 제도 자체에 도전하기도 했다. 다다이즘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허무적 이상주의'''와 '''반항 정신''' 두 가지인데, 이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예술의 '관례'에 대한 반대였다. 그래서 다다이스트들은 예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예술형태를 도입했다. 다다이즘으로 인해서 예술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고, 관중들은 예술활동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류문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예술운동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시대의 모든 예술가들이 예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03-3.jpg]] 게오르그 그로츠, <사회의 기둥>, 192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6231|#]] [[파일:external/7f620d5cebcb2c1561592285b9058d0510637a2ad2f419f3520be4ea57b630a5.jpg]] 존 하트필드, <히틀러식 경례의 의미: 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 모토: 백만장자가 내 뒤에 있다!>, 1932 (잡지 'AIZ'의 표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1&contents_id=4952|#]]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취리히에 있던 다다이스트들은 독일, 프랑스 등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도 다다를 계속했다. 독일 출신 다다이스트들은 베를린, 하노버, 쾰른 등으로 돌아갔고, 이중 베를린 다다와 쾰른 다다가 유명하다. 베를린에서는 라울 하우스만, 게오르그 그로스, 한나 회흐, 존 하트필드 등이 주로 작업했다. 취리히와는 달리 베를린 다다는 정치적 작업을 주로 했고, 혁명적 요소를 강조했다. 하우스만은 아상블라주(assambleuse)[* 여러 가지 오브제를 모아 붙이는 것. 콜라주와 다른 점은 콜라주는 평면인데 반해 아상블라주는 입체라는 것이다.] 회흐나 하트필드는 포토몽타주[* 2장 이상의 사진을 붙여 중복인화 ·중복노출 등으로 새로운 시각효과를 노린 것.] 작업을 주로 했다. 이들이 했던 작업을 보면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을 비판한 작업들이 많다. 그로츠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배층을 구성하는 출판업자들, 민족주의자, 군주제 지지자들, 성직자 등을 대표하는 이들을 위선자, 도덕적인 불감증을 가진 자들로 묘사했다. 하트필드의 경우는 아예 [[아돌프 히틀러|총통 각하]]를 비아냥대는 풍자물을 대놓고 제작하였다. == 다다이즘의 영향 == 하우스만은 1919년에 이렇게 말했다. >“다다에 화를 내는 독일 속물은 누구인가? 독일 시인이다. 독일 지식인이다. 그는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자신의 영혼이 저잣거리의 웃음거리가 된 데 분노를 터뜨린다. 그는 뇌 한가운데에 총알을 맞고서 미쳐 날뛴다. 그런데 그의 뇌는 머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앉은 곳에 있었다. 이제 그는 앉아 있을 데가 없다! 아, 신사 나리들, 우리를 공격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적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우리를 저격하는 방법을 당신들보다 훨씬 잘 안다. 당신들이 어떤 입장을 보이든 우리는 전혀 상관치 않을 것임을 알라. 우리는 당신들과 종류가 전혀 다르다. 당신들은 온몸의 힘을 다 모아서 당신들의 정신적 사업의 북을 두드려라. 당신들의 뱃살을 힘차게 두드려라. 신이 그 소리를 듣고 불쌍히 여길지 모르지 않는가. 우리는 이 낡은 북을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우리는 툴툴거리고, 꽥꽥거리며, 욕설을 하고, 비웃으면서, 아이러니를 말한다. 우리가 다다인 것은 안티다다이스트이기 때문이라고! 이제 당신들은 난감해졌다! 당신들의 긁힌 뼈를 쉬게 하고 당신들의 해진 입을 기워라. 당신들은 헛수고를 한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총살할 수 없으니, 우리는 잔치라도 벌이고 싶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의 속을 까발려서 당신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결산해보고자 한다.” 다다이즘은 예술사조를 부정했다. 그것은 다시말해 다다이즘이라는 예술사조 또한 부정해야함을 의미한다. 다다이즘은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역사로 사라진다.[* [[허무주의]], [[회의주의]], [[불가지론]] 등 무언가를 부정하는 사상을 [[메타]]적으로 적용하면 마찬가지 [[역설]]이 발생한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들의 개념과 행위를 모방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다다이즘과 같은 예술이 널린 세상을 더 이상 다다이즘으로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그 영향력과 중요성은 아직도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의 파리 분파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며, 이후 [[앵포르멜]], [[네오 다다]], [[플럭서스]], 각종 [[행위예술]]들은 어느정도 이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셀 뒤샹]] 역시 다다이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사례 === * [[백남준]] * [[오노 요코]] * '''[[이상(작가)]]''' * [[예술가의 똥]][* 이건 엄밀하게 말하면 [[개념미술]]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 [[부조리극]]/[[부조리 코미디]] *[[T.O.P]]의 노래 [[T.O.P#s-4.2.5|DOOM DADA]][* 노래의 제목 자체도 다다이즘(DADA)을 향한 운명(DOOM)이라는 뜻이다.] * [[혁오]]가 제작한 다다이즘 모자 * [[데이비드 보위]]: 작사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다이즘을 이끈 트리스탄 차라가 신문에서 문구를 오려 붙이고 뒤섞는 방식으로 시를 썼는데, 이 기법을 시도한 것이다. 또한 그의 무대 의상 중에는 다다이즘 미술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도 있었다. * [[라디오헤드]]의 노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 [[토킹 헤즈]]의 [[Fear of Music#s-3.1|I Zimbra]] [[분류:미술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