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만 정복 (문서 편집) '''Norman Conquest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Normannen.png|width=600]] [목차] == 개요 == 노르만 정복은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유럽]] 대륙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노르만족]]의 정복이다. [[롤로]]의 노르망디 침공으로 시작하여 [[잉글랜드]]에서의 [[노르만 왕조]] 설립, [[이탈리아|남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시칠리아 왕국]] 건국이 모두 노르만 정복의 일환이다. 다만, [[아일랜드]]와 같이 그 저항이 강력하여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사례도 존재한다. 노르만 정복의 말미에는 [[바이킹]]의 일족이었던 노르만족이 서서히 타민족과 융화되며 그 [[정체성]]을 잃게 된다. == [[프랑스]]에서의 노르만족 탄생 == 모든 노르만 정복의 전신이 되는 사건으로 [[820년]] 노르만족이 따뜻한 장소를 찾아 [[프랑스]] 북부 [[세느 강]] 일대를 공격하며 시작되어, [[911년]] [[롤로]] 공과 [[프랑크 왕국|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3세]]의 [[조약]]으로 [[노르망디 공국]]이 세워지기까지 약 100년간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 [[잉글랜드]]에서의 노르만 정복 ==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1세]]를 따라온 [[노르만족]] 기사들이 잉글랜드의 영지를 받고 대륙의 [[봉건제도]]를 잉글랜드로 들여오며 새 지배계층을 이루기 시작해 [[앵글로색슨족]]과 대립했다. 후에 [[존 왕]]이 노르망디, [[앙주]] 등 [[대륙]]의 영토를 대거 상실하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귀족들을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사라졌고 결국 이들은 대부분 동화되어 잉글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르만족은 바이킹의 후예이긴 하지만 이미 [[노르망디]]에 정착한지 200년이 흘러 그 정체성과 혈통, [[언어]][* 물론 프랑스어만 쓴 건 아니었고 [[노르만어]]를 쓰기도 했으며, 현재도 노르만어는 사어가 되지 않고 프랑스의 노르망디와 영국의 [[채널 제도]]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풍습]], [[문화]], [[종교]][* 다만 채널 제도의 노르만족은 [[성공회]]로 개종하기도 했다.]는 [[프랑스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 라이벌 관계를 들먹일 때 노르만 정복은 사실 [[프랑스]]의 잉글랜드 정복이었다라는 떡밥은 양국 국민들의 불타는 주제이기도 하다. == [[이탈리아]]에서의 노르만 정복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르만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 [[11세기]] 초 노르만 기사들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국가]]들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동로마 제국]]과 [[무슬림]] 군주들과 싸웠는데 이들은 나중에 시칠리아의 정착하며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로베르 기스카르]]의 [[조카]]였던 [[루지에로 2세]]가 당시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와 [[교황]] [[인노첸시오 2세]]의 지지로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 되며 [[오트빌 가문|오트빌(Hauteville) 왕조]]를 세웠다. == [[아일랜드]]에서의 노르만 정복 == 코노트 왕국(Kingdom of Connacht) 국왕으로부터 추방당한 렌스터 왕국(Kingdom of Leinster) 국왕이 잉글랜드 [[헨리 2세]]로부터 도움을 요청하자 리처드 드 클레어 (Richard de Clare) 등이 이끌던 노르만계 기사들이 아일랜드로 들어와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독단적으로 노는 것을 안 좋게 본 [[헨리 2세]]는 [[1171년]]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일랜드를 정복해 명목상 아일랜드 [[국왕]]으로 인정 받았다. [[중세]] 초 아일랜드에 정착한 잉글랜드 노르만족은 [[켈트족]]과 크고 작은 [[전쟁]]를 벌이며 성장했다. 그러나 [[백년전쟁]]이나 [[장미 전쟁]] 등으로 바빴던 [[잉글랜드 국왕]]은 잉글랜드에 충성하던 노르만족 귀족들의 지원을 끊었고 [[흑사병]]으로 노르만족 정착민 수가 감소하며 이 두 민족이 차츰 동화되어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 그 영향 == 이 사건은 [[고대 영어]]에서 [[중세 영어]]로 전환하는 과도기가 되었다. 영어영문과의 '영어학개론' 등의 수업에서 노르만 정복이 꼭 언급된다. [[분류:11세기]] [[분류:노르만족]] [[분류:유럽의 전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