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명집언해 (문서 편집) [[파일:남명집언해.png]] 南明集諺解 [목차] == 개요 == [[조선]]의 국왕 [[세종대왕|세종]]과 [[세조(조선)|세조]], 그리고 승려인 학조 3인이 차례대로 번역한 언해 불계송집. 총 2권 2책이며, 현재 1482년 만들어진 초간본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남명천계송언해(南明泉繼頌諺解),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언해(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繼頌諺解)라고도 부른다. [[중국]] [[송나라]]의 선사 남명천(南明泉)이 영가집(永嘉集)을 계송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의 제4대 왕이었던 [[세종대왕|세종]]이 처음 그 초고를 만들고 직접 남명계송 30여수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 최초이다. 이후 세종이 자신의 아들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나머지 내용들을 번역할 것을 명하였고 이에 수양대군이 번역 작업에 착수하였으나 여러 바쁜 일정으로 인해 결국 둘 다 사망할 때까지 이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훗날 세조의 정실인 [[정희왕후]](자성대왕대비, 慈聖大王大妃)가 돌아가신 시아버지 세종, 지아비 세조의 명복을 기원하며 승려 학조에게 두 사람이 다 이루지 못한 번역 작업을 완수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에 학조가 최종적으로 [[성종(조선)|성종]] 13년인 1482년에 완성한 것이다. 책의 상권에 156수의 노래가, 하권에 164수의 노래가 한글로 번역되어 실려있으며, [[금강경삼가해]]의 것과 동일한 발문이 실려있다. 책은 세조가 만든 [[을해자]]로 찍어냈으며, 번역작업이 완료된 후 세조비 정희왕후가 총 500부를 간행하여 전국에 널리 유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15세기 한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국어사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 외부 링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2842&cid=46674&categoryId=46674|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남명집언해]]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75022&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남명집언해]]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1475&cid=41708&categoryId=41711|국어국문학자료사전 : 남명집언해]]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84039&cid=41828&categoryId=41828|한글글꼴용어사전 : 남명집언해]] [[분류:조선의 불경]][[분류:훈민정음]][[분류:100대 한글 문화 유산]][[분류: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