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원형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의 프로 게이머, rd1=김원형(프로게이머))] || '''김원형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쌍방울 레이더스 개막전 선발 투수)] ---- [include(틀:SSG 랜더스 개막전 선발 투수)] ---- ||<-2> '''{{{+1 [[체육훈장|{{{#F8D1A6 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 ||<-2> [[파일:체육훈장.png|width=200]] || || '''연도''' || '''2005년''' || || '''이름''' || '''김원형''' || || '''분야''' || '''스포츠''' || || '''사유''' || '''체육발전유공''' || ||<-2> '''체육훈장기린장(5등급)''' || ---- || '''김원형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width=70]][[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width=70]][br]'''KBO 리그 한국시리즈[br]우승반지''' || || '''[[2007년 한국시리즈|{{{#ffffff 2007}}}]]''' || '''[[2008년 한국시리즈|{{{#ffffff 2008}}}]]''' || ---- || [[파일:두산 2019V6.png|width=70]][br]'''KBO 리그 한국시리즈[br]우승코치''' || || '''[[2019년 한국시리즈|{{{#ffffff 2019}}}]]''' || ---- || [[파일:SSG 랜더스 우승 엠블럼 V5.svg|height=70]][br]'''KBO 리그 한국시리즈[br]우승감독''' || || '''[[2022년 한국시리즈|{{{#ffffff 2022}}}]]''' || ---- ||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width=auto&height=70]][br]'''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br]{{{#d4af37 금메달}}}''' || || '''[[주성노호/1998년|{{{#ffffff 1998}}}]]''' || ---- || [[KBO 리그|[[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width=25]]]] '''{{{#ffffff [[한국프로야구/2003년 포스트시즌#s-2|{{{#fae7a6 KBO 포스트시즌}}}]]}}}[br]{{{#ffffff 2003 준플레이오프 MVP}}}''' || ---- || [[KBO 리그|[[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width=25]]]] '''{{{#fff [[2022년 한국시리즈|{{{#FAE7A6 KBO 한국시리즈}}}]]}}}[br]{{{#white 2022 KBO 감독상}}}''' || ---- ||<-3> {{{#fff 보유 기록}}} || || '''최연소 노히트 노런''' ||<-2> 20세 9개월 25일 ^^(1993년 4월 30일)^^ || || '''단일 구단 최다 경기 1위 유지 감독''' || 145경기 ^^(2022년 4월 2일 ~ 2023년 4월 2일)^^ || || '''단일 시즌 최다 경기 1위 유지 감독''' || 144경기 ^^(2022시즌 / [[와이어 투 와이어#s-3.1.1|와이어 투 와이어]])^^ || }}} || ---- || '''김원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SSG 랜더스 주장)] ---- [include(틀:SSG 랜더스 감독)] ---- ||<-5> '''{{{#000 [[쌍방울 레이더스|{{{#000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48번}}}''' || || 창단 || {{{+1 →}}} || '''{{{#ffc81e 김원형[br](1991~1994)}}}''' || {{{+1 →}}} || 김종국[br](1996) || ||<-5> '''{{{#000 [[쌍방울 레이더스|{{{#000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6번}}}''' || || 이상대[br](1991.5.15.~1994) || {{{+1 →}}} || '''{{{#ffc81e 김원형[br](1995~1999)}}}''' || {{{+1 →}}} || 팀 해체 || ||<-5> '''{{{#fff [[SK 와이번스|{{{#ffffff SK 와이번스}}}]] 등번호 16번}}}''' || || 팀 창단 || {{{+1 →}}} || '''김원형[br](2000~2011)''' || {{{+1 →}}} || [[이재영(야구선수)|이재영]][br](2012~2015) || ||<-5> '''{{{#fff [[SK 와이번스|{{{#ffffff SK 와이번스}}}]] 등번호 70번}}}''' || || [[김태균(1971)|김태균]][br](2008~2011) || {{{+1 →}}} || '''김원형[br](2012~2016)''' || {{{+1 →}}} || [[이승호(1976)|이승호]][br](2017~2018) || ||<-5> '''{{{#fff [[롯데 자이언츠|{{{#ffffff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5번}}}''' || || [[이용호(1970)|이용호]][br](2013~2016) || {{{+1 →}}} || '''김원형[br](2017~2018)''' || {{{+1 →}}} || [[이우민]][br](2019) || ||<-5> '''{{{#fff [[두산 베어스|{{{#ffffff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 || [[공필성]][br](2016~2018) || {{{+1 →}}} || '''김원형[br](2019~2020)''' || {{{+1 →}}} || [[유재신]][br](2021~2023) || ||<-5> '''{{{#fff [[SSG 랜더스|{{{#ffffff SSG 랜더스}}}]] 등번호 70번}}}''' || || [[서한규]][br](2019~2020) || {{{+1 →}}} || '''김원형[br](2021~2023)''' || {{{+1 →}}} || 결번 || }}} || ---- || '''{{{#FFFFFF A대표팀 참가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주성노호/1998 아시안 게임 엔트리)] }}}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원형 2023 프로필.png|width=100%]]}}} || ||<-2> '''{{{+2 김원형}}} [br] 金圓衡 | Kim Won-hyong''' || ||<|2> '''출생''' ||[[1972년]] [[7월 5일]] ([age(1972-07-05)]세) || ||[[전라북도]] [[전주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전주중앙초 - [[전주동중학교|전주동중]] - [[전주고등학교 야구부|전주고]]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91년/신인드래프트#s-5.1.8|1991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 ||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9)'''[br]'''[[SK 와이번스]] (2000~2011)''' || || '''지도자''' ||[[SK 와이번스]] 플레잉코치 (2011)[br][[SK 와이번스]] 루키군 투수코치 (2012~2013)[br][[SK 와이번스]] 1군 불펜코치 (2014~2015)[* ~8월 14일][br]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5~2016)[* 8월 15일~][br]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투수코치 (2017~2018)[br]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18)[br]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9~2020)''' [br] '''[[SSG 랜더스]] 감독 (2021~2023)'''[* 감독 부임 자체는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에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개막 전인 2021년 3월 5일에 구단이 SSG 랜더스로 변경됨에 따라 SK 소속으로 지휘한 경기 없이 SSG 초대 감독이 됐다.][* 2023년 10월 31일 계약기간을 2년 남기고 경질됐다.]|| || '''병역''' ||[[예술체육요원]][br]{{{-2 ([[주성노호/1998년|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ffa500 '''금메달'''}}})}}} || || '''등장곡''' ||Puff Daddy - I'll Be Missing You || || '''상훈''' ||[[체육훈장]] 기린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야구인]]. 前 [[SSG 랜더스]] 감독[*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감독이고 [[SSG 랜더스]]로 구단명 변경 후 첫 감독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전주고 출신 KBO 리그 선수는 김원형 외에도 그의 영원한 친구인 [[박경완]], SK 시절 가을의 영웅이던 [[박정권]], 삼성과 KIA에서 해결사 역할을 한 [[최형우]] 등이 있다.]으로 1990년대 전주 연고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의 핵심 투수로서 1군에서 뛰기 시작한 첫 해부터 선발로 활약했으며 [[김성근]]의 재임기였던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와중에도 가끔씩 [[중무리]]로도 나와서 던지고 스윙맨의 역할도 하는 등 전천후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고향 구단이 처음 생겨나서 어렵사리 1군에 적응하는 과정은 물론 [[쌍방울 홈 17연승의 비밀|홈에서 연전 연승을 거듭하던 영광의 시절]]과 가난에 지쳐 처참하게 쓰러지는 모습까지 모두 목격한 돌격대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쌍방울 해체 후 재창단된 SK 와이번스의 창단 멤버로 참여했으며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비로소 우승에 성공하며 프로 선수 생활 17년 만에 통산 첫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2011년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한 뒤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직을 맡았다. 2020년 시즌 종료 후 친정 SK 와이번스의 제8대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다만 2021년 초 [[신세계의 SK 와이번스 인수|SK가 와이번스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매각하면서]] SK 감독으로서 경기를 지휘한 적은 한 번도 없게 됐다. 고향 구단 쌍방울의 마지막 감독인 [[김준환]]과 같은 케이스.] 2022년 KBO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서 KBO 역대 두번째로 단일팀 선수-감독 우승 경험 기록자가 됐다.[* 역대 최초는 前 두산 베어스 포수-감독 [[김태형(1967)|김태형]]이다.] == [[/선수 경력|선수 경력]] == ||<-4> '''통합 선수 경력: [[김원형/선수 경력]]''' || ||<-4> [[KBO 리그|[[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width=55]]]] || || [[김원형/선수 경력#s-2.1|{{{#000000 '''1991년'''}}}]] || [[김원형/선수 경력#s-2.2|{{{#000000 '''1992년'''}}}]] || [[김원형/선수 경력#s-2.3|{{{#000000 '''1993년'''}}}]] || [[김원형/선수 경력#s-2.4|{{{#000000 '''1994년'''}}}]] || || [[김원형/선수 경력#s-2.5|{{{#000000 '''1995년'''}}}]] || [[김원형/선수 경력#s-2.6|{{{#000000 '''1996년'''}}}]] || [[김원형/선수 경력#s-2.7|'''{{{#000000 1997년}}}''']] || [[김원형/선수 경력#s-2.8|'''{{{#000000 1998년}}}''']] || || [[김원형/선수 경력#s-2.9|'''{{{#000 1999년}}}''']] || [[김원형/선수 경력#s-3.1|'''{{{#ffffff 2000년}}}''']] ||<-2> [[김원형/선수 경력#s-3.2|'''{{{#ffffff 2001~2003년}}}''']] || || [[김원형/선수 경력#s-3.3|'''{{{#ffffff 2004년}}}''']] || [[김원형/선수 경력#s-3.4|'''{{{#ffffff 2005년}}}''']] || [[김원형/선수 경력#s-3.5|'''{{{#ffffff 2006년}}}''']] || [[김원형/선수 경력#s-3.6|'''{{{#ffffff 2007년}}}''']] || || [[김원형/선수 경력#s-3.7|'''{{{#ffffff 2008년}}}''']] ||<-2> [[김원형/선수 경력#s-3.8|'''{{{#ffffff 2009~2010년}}}''']] || [[김원형/선수 경력#s-3.9|'''{{{#ffffff 2011년}}}''']] || == 피칭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원형커브1.gif|width=100%]] }}}|| || '''김원형의 전매특허 구질이었던 [[커브볼]]''' || 134승으로 다승 전체 9위[* 은퇴 시점에서는 다승 전체 5위로, 현재는 1위 [[송진우(야구)|송진우]], 2위 [[양현종]], 3위 [[정민철]], 4위 [[이강철]], 5위 [[김광현]], 6위 [[선동열]], 7위 [[배영수]], 8위 [[윤성환]]]를 기록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팀 전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 쌍방울은 창단 초창기부터 투타의 전력 균형이 제대로 맞춰지지 못한 팀이었다. 그 중에도 투수 부문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구단 역사상 내로라하는 스타급 투수를 꼽아봐도 김원형, [[조규제]], [[김현욱(야구)|김현욱]],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 [[성영재]] 뿐이다. 특히 선발진은 10년이라는 짧은 구단 역사 내내 5선발 체제를 제대로 구축한 해가 없었을 정도로 진짜 답이 없었다. 초창기 에이스 [[박성기(야구)|박성기]]부터 이후 짧은 전성기 때의 [[오봉옥]], [[최정환(야구선수)|최정환]] 등의 선수들이 나름 터져 주었으나 롱런한 선수들은 아니다.] 관계로 144패로 [[송진우(야구)|송진우]]에 이어 다패 2위를 기록했다. 투구이닝 전체 4위(2,171이닝). 1위 [[송진우(야구)|송진우]], 2위 [[정민철]], 3위 [[이강철]]. 야만없이지만, 김원형이 조금만 더 강한 팀에 있었더라면 해태는 못 되어도[* 만약 전북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지 않고 호남에 [[해태 타이거즈]] 한 팀만 있었다면 해태 유니폼을 입은 김원형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LG나 OB에서라도 있었으면 다승 순위에서 [[선동열]]도 제쳤을 것이다. 어찌 보면 비운의 투수. 채찍질 하듯이 던지는 투구폼이 인상적이며, 177cm, 75kg의 투수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체격이지만, 전성기 때는 그 체격에서 140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구사하였다. 후기에는 최고구속 140대 초반, 평균 구속 130대 후반. 대신 수준급의 제구력을 갖춰 맞춰잡는 스타일의 피칭을 선보인다. 주로 느린 체인지업으로 완급조절을 하며, 포크볼도 던진다. 기교파 변신 이후, 땅볼 유도할 때 간간히 싱커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최고의 주무기는 빠르고 "횡"이 아닌 "종"으로 떨어지면서도 스트라이크인데도 타자가 머리로 공이 날아오는 줄 알고 움찔할 정도로 큰 각을 지닌 12-6성 파워커브로, 희대의 마구 중 하나였다. 구속은 125km/h 정도.[* 당대의 선수로는 [[이대진]], [[정민철]], [[정민태]] 이와 같은 선수들도 사용하였다. 단, 정민태는 슬로우 커브에 집중으로 사용했다.] 삼성의 당대 최강의 파워커브볼러인 삼성 암흑기의 에이스 "만딩고" [[김상엽]]과 비견되기도 하였다. 덕분에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매니저에선 김원형의 레전드 카드를 입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1성구 카드로 1995년도 올스타 김상엽이 나왔다. 커브 구속은 김상엽보다 조금 느리지만 각도 하나는 당대 제일이었다고. "헬리콥터 커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같은 시기를 불태운 라이벌 정민철과 거의 비슷한 유형의 커브볼러였다. 그러나 정민철은 패스트볼과 커브볼 속도의 간극을 이용한 커브라면 김원형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속도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궤적도 거의 똑같은 볼이라 기다리는 타자 입장에선 이게 속구인지 커브인지 영겁과도 같은 고민을 하다가 배트를 휘둘러야했고 그러면 대부분 삼진이었다. 볼넷을 매우 싫어하는 스타일로 볼넷을 줄 바에는 홈런이나 안타를 맞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 공격적으로 피칭한다.[* 그의 '''영혼의 배터리'''였던 [[박경완]]이 2020년 인터뷰에서 "원형이는 2S 볼카운트에서도 볼을 빼는 법이 없었다. 포수 입장에서는 그때 안타를 맞으면 코치님에게 박살이 나는데, 덕아웃 들어가서 '볼 좀 던지자'라고 하소연 하면 '미안해' 라고 할 뿐 다음 이닝도 똑같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그리고 이건 2021년 랜더스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보여준다. == 연도별 성적 == ||<-16> '''{{{#ffcc00 역대 성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 1991 ||<|9>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 29 || 136⅓ || 7 || 11 || 0 || - || 4.69 || 131 || 12 || 78 || 75 || 77 || 71 || 1.48 || || 1992 || 22 || 138⅓ || 8 || 7 || 1 || - || 3.32 || 125 || 13 || 60 || 104 || 60 || 51 || 1.29 || || 1993 || 26 || 135⅓ || 11 || 9 || 0 || - || 2.93 || 115 || 9 || 70 || 87 || 50 || 44 || 1.29 || || 1994 || 25 || 132 || 5 || 11 || 1 || - || 5.39 || 143 || 14 || 63 || 75 || '''85''' [br] (3위) || '''79''' [br] (3위) || 1.48 || || 1995 || 25 || 143⅔ || 9 || 8 || 0 || - || 3.95 || 145 || 14 || 71 || 69 || '''82''' [br] (4위) || 63 || 1.41 || || 1996 || 26 || 126⅔ || 5 || 8 || 0 || - || 4.12 || 133 || 10 || 56 || 69 || 71 || 58 || 1.45 || || 1997 || 29 || 157 || 9 || 9 || 0 || - || '''2.75'''[br](5위) || 139 || 13 || 50 || 80 || 62 || 48 || 1.16 || || 1998 || 51 || 150 || 12 || 7 || 13 || - || '''2.52'''[br](5위) || 130 || 10 || 48 || 109 || 54 || 42 || 1.15 || || 1999 || 17 || 37 || 2 || 3 || 2 || - || 4.86 || 30 || 3 || 16 || 38 || 22 || 20 || 1.1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 2000 ||<|11> [[SK 와이번스|SK]] || 29 || 93 || 2 || '''{{{#ff0000 13}}}''' [br] (1위) || 5 || 0 || 5.81 || 112 || 18 || 36 || 52 || 70 || 60 || 1.54 || || 2001 || 26 || 154⅓ || 9 || 9 || 0 || 0 || 4.37 || 152 || '''20'''[br] (4위) || 63 || 100 || 89 || 75 || 1.37 || || 2002 || 13 || 58⅓ || 4 || 5 || 0 || 0 || 5.25 || 67 || 14 || 19 || 37 || 40 || 34 || 1.44 || || 2003 || 30 || 79⅓ || 7 || 7 || 1 || 4 || 3.74 || 87 || 13 || 24 || 44 || 34 || 33 || 1.32 || || 2004 || 30 || 135 || 8 || 6 || 1 || 1 || 4.20 || 147 || '''19'''[br] (5위) || 51 || 78 || 70 || 63 || 1.39 || || 2005 || 30 || '''171⅔'''[br](5위) || '''14'''[br](4위) || 8 || 0 || 0 || 3.41 || 172 || '''17'''[br] (5위) || 45 || 94 || 73 || 65 || '''1.18'''[br] (4위) || || 2006 || 24 || 139⅓ || 5 || 9 || 0 || 0 || 4.07 || 152 || 11 || 54 || 52 || 69 || 63 || 1.39 || || 2007 || 43 || 73⅔ || 5 || 4 || 0 || 4 || 4.15 || 87 || 6 || 30 || 25 || 41 || 34 || 1.48 || || 2008 || 42 || 74⅓ || '''12'''[br](4위) || 6 || 2 || 2 || 3.15 || 73 || 6 || 28 || 41 || 28 || 26 || 1.29 || || 2009 || 25 || 33⅓ || 0 || 4 || 0 || 1 || 4.59 || 36 || 3 || 19 || 17 || 17 || 17 || 1.62 || || 2010 || 3 || 2⅓ || 0 || 0 || 0 || 0 || 0.00 || 0 || 0 || 0 || 0 || 2 || 0 || 1.29 || ||<-2> '''[[KBO 리그|KBO]] 통산''' [br] (20시즌) || 545 || '''2171'''[br](4위) || 134 || '''144''' [br] (2위) || 26 || 12 || 3.92 || 2179 || '''225'''[br] (2위) || 881 || 1246 || 1096 || 946 || 1.35 || ||<-3> {{{#ffffff 완투, 완봉기록}}} || || 년도 || 완투 || 완봉 || || 1991 || 4완투 || 1완봉 || || 1992 || 7완투 || 1완봉 || || 1993 || 6완투 || '''3완봉'''[br] (5위) || || 1994 || 2완투 || 0완봉 || || 1995 || 4완투 || 2완봉 || || 1996 || 1완투 || 0완봉 || || 1997 || '''3완투'''[br] (5위) || 0완봉 || || 2001 || 6완투 || 1완봉 || || 2004 || 2완투 || 0완봉 || || 통산 || 29완투 || 7완봉 || == [[김원형/지도자 경력|지도자 경력]] == ||<-3> '''통합 선수 경력: [[김원형/지도자 경력]]''' || ||<-3>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width=110]] || || [[김원형/지도자 경력#s-1|'''{{{#ffffff SK 시절}}}''']] || [[김원형/지도자 경력#s-2|'''{{{#ffffff 롯데 시절}}}''']] || [[김원형/지도자 경력#s-3|'''{{{#ffffff 두산 시절}}}''']] || || [[김원형/2021년|'''{{{#ffffff 2021년}}}''']] || [[김원형/2022년|'''{{{#ffffff 2022년}}}''']] || [[김원형/2023년|'''{{{#ffffff 2023년}}}''']] || === 감독 성적 === ||<-8> '''{{{#ffffff 감독 성적}}}''' || || 연도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정규시즌 || 포스트시즌 || || [[김원형/2021년|2021]] ||<|3> '''[[SSG 랜더스|SSG]]''' || 144 || 66 || 64 || 14 || 6위 || - || || [[김원형/2022년|2022]] || 144 || 88 || 52 || 4 || '''1위''' || '''우승''' || || [[김원형/2023년|2023]] || 144 || 76 || 65 || 3 || '''3위''' || '''3위'''[* 준플레이오프에서 NC 상대로 패배했으나, NC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3위 확정.] || ||<-2> '''통산''' || '''432''' || '''230''' || '''181''' || '''21''' || 0.560 || '''V1''' || == [[김원형/평가|평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원형/평가)] == [[박경완]]과의 관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V_8DGzDlnY)]}}}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원형 박경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18/2008/05/12/1210565405.791537_PP08051200012.jpg|width=100%]]}}} || || 현역시절 김원형과 박경완 배터리[* 첫 번째 사진에서 둘이 같이 걸어온 커리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인지 박경완의 현대 시절 경력(1998~2002)이 누락되어 있다.] || '''영혼의 전주-쌍방울-SK 배터리'''로 김원형을 언급하든, 박경완을 언급하든 간에 둘은 꼭 서로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이 나오는 존재이다. 박경완과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함께 지낸 영혼의 배터리이자 30년지기 절친인데, 같은 전주 출신을 시작으로 전주 중앙초-전주동중-전주고를 함께 나와서, 전주 연고팀인 쌍방울에 같이 입단했다. 1991년 김원형 덕에 [[박경완]]이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 대학 진학을 모색하다가 무산되면서 졸지에 붕 떠버린 박경완이 쌍방울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최고 유망주의 친구라서 볼 받아주고, 말동무 해달라는 팀의 뜻이 컸다고 한다. 박경완은 고등학교 때는 생각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고, 기량 저하까지 겹치면서 프로 진출마저 불투명했으나, 그해 1차 지명선수였던 김원형의 도움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고, 성공 신화를 같이 쓸 수 있었다. 1997 시즌 후 어려운 모기업 사정으로 인하여 박경완이 현대로 당시 사상 최고인 9억이란 거금에 트레이드되었다. 한편,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될 당시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원형은 충격을 받고 "나 딴 팀 안 갈거야!!"라고 외치며 도망쳐서 스쿠터로 전주시내를 이리저리 질주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떨어져서 다른 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시 떨어져 있었던 때, 박경완이 타석에 들어서자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났음에도 차마 빈볼을 던질 수 없어 위협구만 연거푸 던지다 퇴장당한 사건은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72900329126016&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7-29&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498&publishType=00010|1998년 7월 26일 경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원형 은퇴식.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404051757269726_l.jpg|width=100%]]}}} || || 김원형의 은퇴식에 꽃다발을 전달하는 [[박경완]] || 절친 박경완의 은퇴식에 시구자로 나와 함께하는 김원형 || 그리고 [[박경완]]이 FA 자격을 얻어 2003년 SK에 돌아오면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5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은 팀에서 함께 지내며 '''21년차 역대 최장수 배터리'''로 활약하게 되었다. 둘 다 은퇴한 2013년에도 김원형은 투수코치, [[박경완]]은 2군 감독으로서 코치로서도 또 같은 팀에서 생활하게 되었으며, 2014시즌에도 김원형이 1군 투수코치, [[박경완]]이 그대로 2군 감독을 맡게 되면서 같은 팀에 있는 햇수가 '''24년'''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에도 [[박경완]]이 육성총괄, 김원형이 1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결국 같은 팀에 있는 햇수 '''25년'''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6 시즌에도 [[박경완]]은 1군 배터리 코치에, 김원형은 1군 투수코치에 선임되어 같은 팀에 있는 햇수를 '''26년'''으로 연장시켰다. 쌍방울 시절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50800329130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5-08&officeId=00032&pageNo=30&printNo=15760&publishType=00010&doNotReadAnyMore=notClose|박경완과의 에피소드(?).]] 밑의 5시 방향 조그만 기사도 둘의 기사다. 2011년 은퇴를 선언한 김원형이 [[KBO 준플레이오프/2011년|준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에 나섰을 때,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박경완[* 당시 재활 중]이 자기 공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아쉽다고... 아... 영혼의 배터리... 결국 2014년 4월 5일, 박경완의 영구결번식 겸 은퇴식 날에 박경완이 시포, 김원형이 시구를 함으로써,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21년차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장수 배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이 된 한 개의 공을 던지고 받으며 둘의 프로생활 20여년의 대장정의 끝을 맺고, 성대한 마무리를 맞이하였다. 시구와 시포 후, 두 영혼의 배터리의 마운드에서의 마지막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박경완: "원형아!" >김원형: "이게 마지막 공이다" >박경완: "그래, 고맙다" >김원형: "수고했다" >박경완: "어... 고맙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원형 박경완 코치.jpg|width=100%]]}}} || ||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함께했던 김원형과 박경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경완 김원형 인터뷰.jpg|width=100%]]}}} || || 2020년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 함께한 김원형 두산 투수코치와 박경완 SK 수석코치. || 2020년 [[스포츠동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여전히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보니 대놓고 나가서 보기에는 조금 껄끄럽다고.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01/99047153/5|#]] 맞대결 후 사석에서 만나게 되면 둘 중 한 명은 패한 팀 코치이기 때문에 구설수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 그리고 2021년 김원형은 감독으로 SK에 돌아왔지만 박경완은 감독대행 자리에서 물러나 SK를 떠나면서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김원형이 박경완의 후임 자리로 가게 된 것.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경완 KBO 레전드 40인 시상식.jpg|width=100%]]}}} || || [[박경완]]의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시상식에서 재회한 김원형 감독. || 박경완 국가대표팀 배터리 코치가 2022년 8월 22일,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성실함의 대명사 부문에서 전체 순위 23위로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었고, 2022년 9월 18일 [[SSG 랜더스]]와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 클리닝 타임에서 시상식이 진행됐다. 김원형 감독이 박경완 코치에게 기념 트로피를 건내주면서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김원형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민경삼]] 대표이사가 기념액자와 트로피를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김원형 감독이 박경완 코치에게 직접 트로피를 전달하고 싶다고 구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2023년에는 박경완이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 1군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게 되면서 202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두 친구가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됐다. 근래에는 경기 전 워밍업 타임 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5월 24일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의 홈 경기을 앞두고 [[이호준]]과 [[이종범]], [[박경완]] 등 현역 시절 레전드 급 성적을 기록했던 [[LG 트윈스]]의 코치들이 배팅 케이지에 들어서 타격 연습을 했고 김원형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박경완이 날카로운 타격을 뽐내자 "아직 살아있네, 살아있어"라고 유쾌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 기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미친동안김원형.jpg|width=100%]]}}} || * 별명은 곱상한 외모와 덤으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동안으로 인해 '[[어린왕자]]'[*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도 이 별명이 있다.][* 감독 취임 이후에는 '왕동님'이라고 불린다.]. 당장 쌍방울 레이더스 초기 시절의 모습만 봐도 성인 프로선수라기 보다는 중학교 리틀 야구단 선수 같아 보인다. 워낙에 외모가 곱상한 덕에 쌍방울 입단 동기이자 선배인 [[김기태(1969)|김기태]]가 "얘는 어디 높으신 분 빽으로 여기 들어왔냐"고 말했을 정도. 이 외모 덕분에 적어도 쌍방울의 연고지였던 전주지역 내 인기는 아이돌 스타급이었다. 쉽게 생각해서 '''[[박정수(야구선수)|박정수]]'''가 KIA 선수 시절 광주에서 얻은 인기의 몇 배였다고 보면 된다. 박정수가 광주에서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과거 전주의 김원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박정수는 어쩌다 한 번 나오는 1.5군급 불펜 투수지만 김원형은 팀을 먹여살리는 에이스 투수였기에 그 가치는 더더욱 컸다. 특히나 모기업 쌍방울이 가난에 허덕여 레이더스 야구단을 해체하려 하자 전주 팬들도 직접 나서서 쌍방울의 [[속옷]]을 사 줬을 정도인데 그 팀의 '''젊고 잘생긴 에이스'''는 그야말로 형용불가. 저 사진이 찍혔을 당시 나이가 무려 '''39세.''' 현재는 나이 '''50세'''가 되었지만 지금도 면도 잘 하고 머리 스타일 정리만 깔끔하게 하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동안]]'''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고 나서 홍보팀이 포토샵의 색 처리를 잘못했는지 SNS에 올린 사진에서는 늙수그레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오키나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영상에서는 얼굴이 돌아온 편. 그러니깐, 처리를 제대로 못한 게 커서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 다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두산 시절부터 갑자기 흰 머리가 늘었고 감독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이 늘어난 탓에 더 이상 동안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 이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성격은 매우 드센 것으로 보인다. 현역 시절에는 그 김성근조차도 "[[https://youtu.be/arcntk2dN_8?t=793|걔는… 성질이… 어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 특히 주장 시절에는 장악력이 굉장하였다고 회고했다. 감독이 돼서는 특히 투수가 [[https://m.mksports.co.kr/view-amp/2021/420185/|볼넷을]] [[https://www.fmkorea.com/best/5746393129|남발]][[ https://mlbpark.donga.com/mp/b.php?m=search&p=61&b=kbotown&id=202211200076066848&select=spf&query=SSG&user=&site=donga.com&reply=&source=&pos=&sig=h4a9Sg2Yk3HRKfX2h3a9Sg-A5mlq|하면]] 몹시 무섭게 변한다. 물론 [[볼질]]을 좋아할 감독은 없으나, 특히 김원형은 현역 시절에 제구력이 좋은 투수였고 자신감도 있었으니 볼질을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선수단과 소통하면서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편이라고 한다. * 현역 시절 포크볼로 유명했던 만큼 투수들에게 포크볼은 기본적으로 장착시켜 성공적으로 전력화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원준(1994)|최원준]], [[크리스 플렉센]]. * [[2010년대]]에 KBO 리그 현역 선수 생활을 보낸 최초의 감독이다.[* 2010년에 은퇴하고 2022년에 KIA 감독으로 취임한 [[김종국(야구)|김종국]]이 두 번째, 2017년에 은퇴하고 2023년에 두산 감독으로 취임한 [[이승엽]]이 세 번째 사례다.] * [[KBO 리그]] 역대 2번째 고졸 신인 선수 출신 감독이다. 1번째는 [[허삼영]]. *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으로는 광주광역시의 [[김기태(1969)|김기태]], 부산광역시의 [[조원우(야구)|조원우]]에 이어 3번째로 정식 감독이 됐다. 아울러 [[전라북도]] [[전주시]] 출신으로는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 [[전라북도]] 출신으로 범위를 넓히면 해태 타이거즈 최후의 감독이자 KIA 타이거즈 초대 감독이었던 [[군산시]] 출신 [[김성한]]이 있었다. 쌍방울 최후의 감독이었던 [[완주군]] 출신 [[김준환]]도 있기는 하지만 단 한 경기의 정식 경기도 치러보지 못하고 구단이 해체됐기에 역대 감독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감독대행으로는 앞서 언급된 김준환 전 쌍방울 감독대행과 김원형의 친구인 [[박경완]] 전 SK 감독대행이 있다.] * [[KBO 리그]] [[노히트 노런]] 기록 보유자 중에서는 역대 두 번째로 감독이 됐다. 1번째는 [[선동열]]. 아울러 [[KBO 리그]]에서 개인 통산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 출신으로는 [[이강철]](152승), [[선동열]](146승), [[김시진]](124승)에 이어 네 번째 감독이다. * [[허용투수]]기도 하다. SK 선수 시절인 2003년 6월 22일, [[이승엽]]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 신기록을 허용한 상대 투수였다. 아이러하게도 둘 다 20년 뒤인 2023년에는 각각 SSG와 두산의 1군 감독으로 맞대결을 펼치게 됐고 두산을 상대로 11승 1무 4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 선수 시절에도 상당히 공격적으로 카운트 싸움을 들어가는 스타일이었다 보니 [[SSG 랜더스]]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투수들에게 공격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피칭을 강조한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밀어넣다가 안타를 맞고 홈런을 두들겨 맞을지언정 볼넷으로 주자를 쌓는 꼴은 절대 못 보는 '''볼넷 혐오자'''. 홈런으로 경기를 터뜨린 투수보다, 볼넷으로 장작 쌓다가 불지른 투수를 칼같이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2군으로 보내 버리는 극명한 취향이 꽤나 자주 드러난다.[* 물론 투수의 제구가 완벽하지 않아서 공이 빠지거나, 유인구에 타자가 속지 않거나, 볼배합으로 수싸움을 하다가 타자의 선구안으로 [[볼넷]]을 골라 나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어디까지나 정타를 맞을까봐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꽂아넣지 못 하고 바깥쪽 공만 던지는, 소위 ''''달아나는 피칭''''이 문제인 것. 실제로도 [[세이버메트릭스]]로도 볼넷은 타자의 [[출루율]]을 높이기 때문에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볼질하는 투수에 대해 김원형이 성격상 더 얄짤없다고 해도, 원래 상대편이 아닌 이상 [[볼질]]은 투수도 코칭스태프도 수비하는 야수와 포수도 심지어 투수팀 팬들도 다 짜증나고 싫어하기 마련이다.][* 2021년 [[김세현(야구선수)|김세현]]이 '''3연속 밀어내기 볼넷'''을 주면서도 딱히 심각함을 자각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자, 칼같이 2군으로 내려버리고 며칠 후 방출시켜 버린 일화는 ''''세현하다''''라는 밈으로 쓰일 정도로 김원형의 성향을 극명하게 대표한다. 물론 김세현은 투수로서의 처참한 성적 이외에도 과거 그와 아내가 저질렀던 업보도 있기 때문에 팀 내 워크에씩 함양을 위해서라도 방출할 이유는 충분했다.] * 2023년 기준으로 [[김광현]], [[최정]], [[김성현(1987)|김성현]], [[이재원(1988)|이재원]], [[김강민]], [[고효준]]은 김원형의 현역 시절부터 같이 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인데 김원형이 감독 부임 이후로도 같은 팀의 선수로써 활약했다. 특히 김광현, 최정, 김강민, 이재원은 선수 김원형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받기도 했다. * 2007~2008년 [[SK 와이번스]] 선수로, 2019년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2022년 [[SSG 랜더스]]의 감독으로 모두 우승반지를 껴보는데 성공하면서 [[조범현]], [[이강철]]에 이어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본 세 번째 사례가 됐다.[* 다만 아직까지 '''한 구단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사례는 없다. [[조범현]]도 선수 때는 OB(1982년), 코치 때는 삼성(2002년), 감독으로써는 KIA(2009년)에서 해보는 등 각자 다른 팀 소속으로 우승을 했고 [[이강철]]은 선수와 코치 시절 우승을 모두 해태-KIA에서 해 봤으나 감독으로써의 우승은 kt에서 해봤다. 하물며 삼성 코치로 3번, 감독으로 4번이나 우승을 이뤄본 [[류중일]]도 현역 시절에는 우승반지를 한 번도 얻어보지 못했다. 간혹 [[김태형(1967)|김태형]] 전 두산 감독이 한 구단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우승을 해본 사례로 알려진 경우가 있지만 김태형은 [[2001년 한국시리즈]] 당시 정식 코치가 아니라 엔트리에 없었고 선수(1995년), 감독(2015~2016년, 2019년)으로만 우승을 경험해 봤다.] * KBO 역사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로 2022 정규시즌 - 2022 한국시리즈를 통합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아쉽게 순위권에 들지 못한 10명 중 1명이다. 순위는 49위였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정근우]]가 등번호를 바꾸게 한 장본인이다. [[https://youtu.be/pvAMhqYnQmo?t=488|원래, 정근우는 16번]]을 계속 유지해 왔는데 [[SK 와이번스]] 입단을 해보니 김원형이 16번을 달고 있었던 것. 차마 선배의 번호를 달라고 할 순 없었기에, 남는 번호였던 '''8번과 47번''' 중 8번을 택하게 되어 8번이 정근우의 대표 번호가 된 것이다.[*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16번의 반이 8번이고 오뚝이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8번을 고르게 되었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김원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