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광(축구선수) (문서 편집) [include(틀:성남 FC/간략)]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김영광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울산 현대/역대 주장)] ---- [include(틀:서울 이랜드 FC/역대 주장)]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김영광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4>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 {{{#333333,#cccccc '''개인 수상'''}}} || || || || || || ||<-4> {{{#333333,#cccccc '''베스트팀'''}}} || || [[K리그1|[[파일:K리그1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e3224; font-size: 0.9em" [[틀:2011 K리그 베스트 11|{{{#ffffff '''2011 K리그 베스트 11'''}}}]]}}} || [[K리그2|[[파일:K리그2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67ac; font-size: 0.9em" [[틀:2018 K리그2 베스트 11|{{{#ffffff '''2018 K리그2 베스트 11'''}}}]]}}} ||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1 김영광.png|width=100%]]}}} || ||<-2> '''{{{#ffffff 성남 FC No. 41}}}''' || ||<-2> '''{{{#000000,#e5e5e5 {{{+1 김영광}}} [br] {{{-2 金永光 | Kim Young‑Kwang}}}}}}''' || || '''출생''' ||[[1983년]] [[6월 28일]] ([age(1983-06-27)]세) [br] [[전라남도]] [[고흥군]][* 자란 곳은 순천이다.] || ||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강남구)|역삼동]]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신체''' ||183cm, 87kg, [[A형]][*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09/11/606063/|#]]] || || '''포지션''' ||[[골키퍼]] || || '''학력''' ||순천중앙초 - [[순천매산중학교|순천매산중]] - [[광양제철고등학교|광양제철고]] || || '''프로 입단''' ||2002년 [[전남 드래곤즈]] || || '''소속 구단''' ||'''[[전남 드래곤즈]] (2002~2006)'''[br]'''[[울산 현대]] (2007~2014)'''[br]→ {{{-1 [[경남 FC]] (2014 / 임대)}}}[br]'''[[서울 이랜드 FC]] (2015~2019)'''[br]'''[[성남 FC]] (2020~ )''' || || '''병역''' ||[[전시근로역]][* 2008년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01/2008120101558.html|오른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 || || '''국가대표''' ||17경기 15실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2004~ )^^ || || '''경기 수''' ||604경기[* 2023년 11월 11일 기준][* 역대 K리그 최다 출전 '''2위'''] || || '''가족''' ||아내 김은지, 딸 2명 || || '''링크''' ||[[https://www.instagram.com/glory.kim_no1/|[[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0]]]] || [목차] [clearfix] == 개요 == [[성남 FC]] 소속 [[골키퍼]]. == 클럽 경력 == ===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 [[2003년]] U-20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이름을 알린 이래 [[김병지]]와 [[이운재]]의 후계자로 낙점받아, [[2004 아테네 올림픽]],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7년 AFC 아시안컵]],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등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했다. 리그에서도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한 이후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전후해서 당시 주전 경쟁을 펼친 염동균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2007~2014) === [[2007년]] '''22억'''이라는 엄청난 이적료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해당 금액은 2021년까지도 '''역대 K리그 내 최다 이적료'''로 남아있다.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으며,[* 이런 까닭에 울산의 골키퍼 기대주였던 김지혁은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하며 울산의 깜짝 준우승에 기여했고, K리그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을 수상하였다. 2012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울산의 첫 번째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에 일조하였고, 국가대표 NO.2 골키퍼로 [[정성룡]]의 최대 경쟁자 자리를 굳게 지켰다. 2013 시즌을 앞두고 구단 역대 두 번째 골키퍼 주장에 부임할 만큼 굳건한 입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부상을 당했고, 김영광이 부상 중이던 기간에 그의 그림자에 가려 만년 2인자였던 [[김승규]]가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 부상에서 회복하였으나 복귀전인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5실점을 하는 최악의 부진으로 완전히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결국 6경기 출장에 그치며 후보 GK 신세가 되었다. ==== [[경남 FC]] (2014, 임대) ==== [[파일:SK004_20140314_131101_59_20140314202102.jpg]] 2014 시즌 전 출전을 보장받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했고, 여름에 김승규를 장기간 국가대표로 보내야 했던 울산이었기에 최종적으로는 임대료를 지불한 경남으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당연히 주전 출장했지만, 팀의 성적이 매우 저조하여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 게다가 시즌 막판 부진하며 [[K리그/2014년/승강 플레이오프|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손정현]]에 밀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13160|출전하지 못했고]] 2차전에 출전했지만 아예 팀이 강등했다. 강등이 되든 안 되든 울산에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결국 시즌 종료 후 울산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주전 출전 여부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울산으로 돌아갔지만 김승규가 여전히 확고하게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 === [[서울 이랜드 FC]] (2015~2019) === 2015년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며 K리그 챌린지 무대에 데뷔했다.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아 공격력은 쓸만하지만 수비력이 엉성한 서울 이랜드에서 여러차례 선방을 해가며 대량 실점 위기서 팀을 구해냈다. 김재성, 조원희 등 창단년도에 영입된 3인방 중 2명이 팀을 떠나고 유일하게 서울E에 남았다. 이후 2017년에 2022년까지 5년 장기 계약을 맺었고, 팀에 대한 공헌도를 인정받아 주장까지 맡았다. 2017년 5월 6일 FC 안양전에서 '''K리그, 리그컵 통산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파일:FB_IMG_1498545325807.jpg|width=400]] 2018 시즌엔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서울 이랜드의 마지막으로 남은 스타 플레이어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는 상무에서 시즌 막바지에 복귀했고, 그마저도 부상을 이유로 거의 출전하지 못하다 다음해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과 K리그 2 베스트 11 GK상을 받았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은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여러 팀에서 영입 요청은 많았지만 서울 이랜드의 K리그1 승격까지 이랜드에 남겠다고 인터뷰했다. 2019 시즌엔 그나마 해주던 전민광과 최오백도 나가버렸고 공격의 핵심 주민규도 이적하면서 허허벌판이 된 팀에서 홀로 고생했다. 안산전에서 패널티킥을 2번이나 막아냈는데도 수비진이 추가시간 1분을 못 버티고 실점하며 무승부를 당하는 경기도 있었다. 2019 시즌을 끝으로 서울 이랜드를 떠났는데 '''왜 팀에서 쫓겨났는 지 모르겠다'''는 평을 들었다. 노쇠화로 실력이 형편없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2019 시즌 종료 후 [[정정용]]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리빌딩을 천명하며 어린 선수 육성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성남 FC]] (2020~ ) === 2020년 3월 19일 [[성남 FC]]는 김영광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FA로 성남에 입단하면서 6년 만에 [[K리그 1]]에 복귀하였다. ==== [[성남 FC/2020년]] ==== 1라운드 [[광주 FC]]전에서 성남 데뷔전을 치렀다. 여러 번 슈퍼 세이브를 보여 주며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도 공격이 부실한 인천을 상대로 무난하게 2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3라운드 [[강원 FC]]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줬지만 전반전 [[고무열]]의 니어포스트로 빨려 들어가는 슈팅에 선제골을 내주며 시즌 첫 실점을 허용했다. 4라운드 [[FC 서울]]전에서 결정적인 슈퍼 세이브 3회를 기록하며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고, 4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4경기 1실점으로 2020시즌 K리그 골키퍼들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노쇠화 우려를 무색하게 했다. [[파일:FB_IMG_1591528300335.jpg|width=600]] 5라운드 [[대구 FC]]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이날 김영광은 프로 500번째 경기를 치러 등번호를 500번으로 하였다. 16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도 선발 출장해 안정적인 선방쇼를 펼첬다. 후반 45+1분에 부산의 코너킥을 멋지게 펀칭한 이후에 맨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부상 위험이 있었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고 팀은 후반 45+5분에 [[도스톤벡 투르스노프]]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승리를 지키진 못했다. 21라운드 [[대구 FC]]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 시작10분만에 [[데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37분에는 [[세징야]]의 추가골에 실점하였고 다행히 전반 종료 직전 [[이창용(축구선수)|이창용]]의 골로 2대1로 전반을 마첬고 후반 14분에 [[나상호]]의 동점골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이후 데얀에게 한번 더 실점하면서 2:3으로 패했다. 2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펼처졌다. 전반 시작 2분 만에 [[연제운]]의 퇴장으로 성남은 시작하자마자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되었는데 전반 11분 [[김준범]]에게 실점한 것을 시작으로 7분 뒤 무고사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하지만 후반에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가며 후반 시작 9분 만에 [[김도혁]]에게, 22분에 김도혁에게 또 한 번 실점하였고 이후 6분 뒤 [[스테판 무고샤|무고사]]에게 실점, 추가시간 1분에 무고사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실점을 하면서 6:0 대패를 하였다. 24라운드와 25라운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팀은 패배했다. 시즌 최종전까지 주전으로 나서서 팀의 잔류에 기여했으며 시즌 종료 후 1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 [[성남 FC/2021년]] ==== 김영광의 프로 데뷔 20주년이 되는 시즌이다. 3월 1일 홈개막전 제주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좋은 선방을 보여주며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3월 7일 수원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37분에 [[박정수(1994)|박정수]]가 퇴장당하는 악재가 겹첬고 3분 뒤 결국 [[김민우(축구선수)|김민우]]에게 실점하면서 1대0으로 패했다. 3월10일 FC 서울전에 선발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팀은 후반 43분 [[기성용]]의 핸드볼 파울로 얻어낸 PK를 [[뮬리치]]가 성공하면서 1:0으로 승리하면서 클린시트와 시즌 첫 승을 가저갔다. 3월 14일 수원 FC전에 선발 출전해 전반 19분 [[무릴로]]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첬으나 후반들어 성남의 공세가 매서웠고 후반 30분 [[뮬리치]]의 동점골이 터졌고 7분 뒤 [[박지수(축구선수)|박지수]]의 퇴장으로 경기가 여유로워졌고 후반 41분에 [[세르지우 부쉬]]의 역전골이 터지면서 팀은 2:1로 승리했다. 3월 21일 포항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시작 5분만에 [[송민규]]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전반 35분 [[이승모]]의 자책골로 1대1로 군형을 마첬고 이후 후반에는 송민규의 퇴장으로 경기가 여유로워졌고 후반 43분에 [[이중민]]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2:1로 승리했다. 4월 3일 울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전반 26분 [[이동준(1997)|이동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하면서 전반을 마첬고 후반에 성남은 맹공을 퍼부었으나 [[조현우]]에게 번번히 막히면서 1:0으로 패했다. [youtube(bYLY_NBMG7k)] 4월 6일 [[대구 FC]]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대구의 폭풍 공격에 맞서 연이은 선방쇼를 이어가면서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축구 커뮤니티에서 팬들은 나이가 10년만 젊었으면 국대 골키퍼 주전 경쟁도 가능했다고 칭찬했다. 이후 해당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4월 10일 [[광주 FC]]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14분 [[페이살 뮬리치]]의 선제골로 앞서나가면서 전반을 마첬고 후반 시작 9분만에 뮬리치의 추가골이 터지고 퇴장당하면서 리드와 동시에 수적 열세라는 위기가 찾아왔으나 다행이 수비수들이 [[펠리페]]를 잘 막아주면서 2:0으로 승리하였다. 4월 18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안정적인 모습으로 골문을 지켰으나 팀은 후반 29분 [[한교원]]에게 실점하면서 1:0으로 패했다. 4월 2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다. 안정감 있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주었으나 김현과 네게바의 근접 헤딩슛과 아길라르의 [[페널티킥]][* 원래 김현이 차서 김영광이 막았으나 키커가 차기 전에 미리 골라인을 벗어나서 막았다는 이유로 다시 주어진 페널티킥을 아길라르가 차서 성공시켰다.]에 실점하며 3실점을 하면서 1:3으로 패했다. 4월 25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었으나 후반 37분 [[이기제]]의 프리킥에 실점하면서 결국 1:0으로 패했다. 4월 30일 [[FC 서울]]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전반 5분만에 [[박용지]]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 [[팔로세비치]]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고 이후 후반 12분 [[홍준호]]의 자책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39분에 [[나상호]]에게 실점하면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이후 두 팀 모두 골문을 열지 못하면서 1:1 무승부로 끝났다. 5월 29일 [[수원 FC]]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으나 시작 4분만에 [[라스 벨트비크|라스]]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전반 26분에 [[무릴로]]에게 추가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고 이후 후반에는 성남의 공격이 살아나면서 후반 시작 5분만에 [[뮬리치]]에 추격골이 터졌으나 10분 뒤 [[이영재(축구선수)|이영재]]에게 실점하였다. 후반 45분 뮬리치에 추격골이 터졌으나 이후 경기가 종료되면서 3:2로 패했다. 6월 6일 순연된 전북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왔다. 하지만 전반 15분만에 [[백승호]]의 장거리 프리킥에 실점했고 설상가상으로 [[김민혁(1992년 8월)|김민혁]]의 퇴장 이후 선수단 전체의 조직력이 무너져 수비 라인이 크게 흔들렸다. 김영광 본인은 [[일류첸코]]의 1:1 찬스를 막아내는 등 분투했으나 결국 구스타보에게 4골을 추가로 내주며 1:5로 패배를 거두고 말았다. 6월 20일 순연된 울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전반 13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 [[힌터제어]]의 근거리 헤더에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13분 뒤 [[이스칸데로프]]에 동점골이 터지면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5분뒤 [[김민준(2000년 2월)|김민준]]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이태희(1992)|이태희]]의 동점골이 터졌으며 이후 울산의 맹공을 잘 막아내면서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8월 8일의 리그 2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홈경기에서 포항의 슈팅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팀의 1 : 0 승리와 무실점 승리를 챙겼다. 8월 17일자 리그 2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 경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하였는데, 이유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묻자 자신의 SNS를 통해 "팬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경기장에 아무도 안 계시더라도 인사 드립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K리그는팬프랜들리다"라는 게시물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216&aid=0000115914|#]] 8월 21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 선발 출장했다. 전반 초반 구자룡의 헤더를 슈퍼 세이브로 막아냈고, 후반 문선민의 드리블 이후 날린 슈팅마저 세이빙해내며 0:0 무승부에 기여했다. 성남이 애초에 이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돌리며 비기는 것을 제 1목적으로 삼은 것을 감안하면 김영광의 이 선방은 천금과도 같았다. 9월 22일의 리그 31라운드 수원 FC 원정에서는 팀이 2:1로 지는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 4분에 [[박수일]]의 백패스가 김영광의 발 앞에서 갑작스럽게 불규칙 바운드가 되어 튀어올랐고, 이에 제대로 낚여 헛발질을 해 공이 뒤로 흘러 자책골을 내주며 성남의 패배에 쐐기를 박고 말았다. 좋지 않은 잔디 상태로 인해 선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불규칙 바운드가 튀어버려 누구의 실책이라고 할 수 없는 억울할 상황이 된 셈. 볼이 튀지 않았다면 김영광이 멀리 차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김영광의 자책골로 표시되었으나 이후 볼이 김영광에게 아예 접촉이 안된 것이 확인되어 백패스를 한 박수일의 자책골로 정정되었다. 9월 26일 리그 32라운드 [[강원 FC]]전에 선발 출장하면서 2:0 클린시트 승리로 경기를 마쳤다. 이날 출전으로 리그 통산 549경기에 출장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548경기의 [[이동국]]을 넘어 역대 K리그 최다 출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리그 통산 706경기에 달하는 [[김병지]]. 김영광도 인터뷰에서 이 기록을 깨려면 6~7년을 더 뛰어야 한다며 절대 깰 수 없다는 걸 안다고 발언했다.[[https://www.interfootball.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4273|#]] 10월 30일 리그 3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골문을 단단히 지켜 1:0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27일 리그 37라운드 광주 FC전에서도 수번의 선방을 성공시키며 팀은 [[안진범]]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둬 잔류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2021시즌의 성적을 인정받아 [[K리그 대상|2021 K리그1 베스트 11]] GK 부문 후보 중 1명으로 선정되었다. 2021시즌 성남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38경기 출전 46실점 클린시트 13회. 베스트 11엔 들지 못했으나 조현우와 더불어 ‘전 경기&전 시간 출장’ 상을 받았다. [[https://www.instagram.com/p/CXP1Uu_P4KC/?utm_medium=copy_link|사진]] ==== [[성남 FC/2022년]] ====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이번 시즌도 성남 소속으로 뛰게 됐다. 이로써 통산 2위이자 현역 1위인 최다 출장 기록은 갱신될 예정. [[K리그1]] 1라운드 [[강원 FC]]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후반전에도 강원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후반 35분 [[마상훈]]의 실책으로 인하여 역습을 허용해 결국 [[디노 이슬라모비치|디노]]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7분뒤 [[김대원]]의 감아차기 원더골에 추가로 실점하면서 결국 2대0으로 패했다. 2월 26일의 리그 2라운드 [[울산 현대]] 전에서는 55분에 [[발레리 카자이슈빌리|바코]]의 [[페널티킥]]을 선방하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재차 페널티킥을 내주는 등 팀의 수비 불안이 쌓이며 이번에도 2실점하고 말았다. 5라운드에선 의외로 [[최필수]]가 선발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벤치에 앉았다. [youtube(QoBh8ivLgnA)] 4월 9일 9R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4:0 패배했고, 결국 이날 경기 종료 후 김남일 감독이 선수단과 같이 직접 서포터즈석 앞까지 찾아가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는데,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강하기 야유를 날리자 눈물을 보이며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11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그러나 후반 27분 [[고영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팀은 포항의 골문을 열지 못하면서 1대0으로 패했다. 12라운드 수원 삼성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전진우(축구선수)|전진우]]에게 실점하였고 이후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결국 1대0으로 패했다. 14라운드 FC 서울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전반 22분 [[구본철(축구선수)|구본철]]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3분 뒤 [[권완규]]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악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맹공을 막아내며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데 성공하였다. 토트넘과의 올스타전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출전해 5실점을 허용했다.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으로 1실점 만을 내주면서 팀의 2:1 승리로 이끌었다 29라운드 우승팀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많은 슈퍼세이브로 팀의 2:0으로 완승을 이끌었다. 37라운드 [[FC 서울]]와의 원정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성남의 승리를 이끌었다. 2022시즌 성남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33경기 출전 60실점 클린시트 2회. 시즌 종료 후 강등된 성남을 떠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 [[성남 FC/2023년]] ==== 강등된 성남을 떠날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결국 잔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월 28일 전지훈련을 끝낸 선수들을 마중 나와 환영하는 동영상이 구단 공식 인스타에 올라간 것을 통해 거의 재계약이 확정되어 잔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그 4라운드까지 [[최필수]]에 밀리며 벤치명단에 있다가 FA컵 2라운드 평창 유나이티드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이날 심동운의 결승골에 팀은 1:0 으로 승리. 리그 5라운드 충북 청주 FC 전에 출장하여 2경기 연속 선발되었고, 2실점을 기록하였다. 팀은 3:2 승리 9월 23일 33라운드 청주와의 홈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 통산 600경기 출장 대기록'''을 세웠다.[[https://www.instagram.com/p/CxhWnuMSTHS/|#]] 10월 7일 아산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자신의 600경기 축하 기념 경기를 치뤘고, 클린시트로 자축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 국가대표 경력 == === 연령별 대표팀 ===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소년 대표팀으로 첫 태극마크를 단 이후, 1998년 5월 16일 AFC U-17 챔피언십 예선 경기에 출장하였고, 2002년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2003년 U-20 월드컵 모두 전경기 출장하며, U-20 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U-23 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8강까지 4경기 모두 출장하였다. 이 시기 김영광의 최대 업적을 꼽자면 '''올림픽 최종예선 6경기 전 경기 무실점'''이다.[* 현재는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 개최되는 [[AFC U-23 아시안컵]] 본선이 올림픽 예선을 대체하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U-23 아시안컵 6경기(조별 라운드 3경기를 포함하여 8강부터 토너먼트 3경기)를 무실점으로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은 골키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영광은 올림픽 2차예선부터 최종예선까지 도합 8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올림픽 예선과 U-23 아시안컵을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위대한 업적이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본선에서 4위를 차지할 때까지 6경기 모두 출장하였다. * U-23 대표팀: 31경기 출전, 19실점 허용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최은성]], [[김용대]]와 함께 실력은 있지만 대표팀에서 빛나지 못한 선수.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며 높은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그리스전에서 김영광은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사실상 무승부를 이끌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슈퍼 세이브를 했다.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리틀 칸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2004년 올림픽에서였다. [include(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2006 독일 월드컵))] 이후 능력도 인정받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였으나, 주전 골키퍼는 [[이운재]]였다. 당시 이운재는 체력 평가 성적과 노쇠화 및 체중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기량면에서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봤을때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프랑스전을 하드 캐리했으니 김영광이 서브인 것은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후, 김영광이 [[이천수]]의 유튜브 컨텐츠에 나와서 언급하기로는 마지막 지역 예선 경기인 사우디 아라비아 전을 앞두고 본프레레가 김영광을 따로 불러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는 이미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김영광을 쓰고 싶었지만 사우디 전이 워낙 자신에게 중요한 경기가 될 거 같아서 쓸 수 없다고 말했으며 대신 지역 예선 때는 이운재가 잘했지만 체중 때문에 점점 실력이 떨어질 거 같으니 본선에선 김영광을 쓰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약속은 사우디 전 이후 본프레레가 경질되면서 지킬 수 없게 되었고 김영광은 그대로 벤치를 지키게 되었다.] 2006년 월드컵 직후 출범한 [[베어벡호]]에 주전으로 낙점되면서 꾸준히 경기에 기용되었으나... [[핌 베어벡]]의 당시 한국 대표팀의 최우선 과제는 세대교체였고, 특히 수비진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한 [[히딩크호]]에서부터 시작한 4백 전술을 한국 축구는 아직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지역 수비가 기반인 4백을 대인 마크 기반의 4백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 수비 기반의 4백 수비 전술로 바꾸는게 최우선시되었다. 선수 발굴을 위해 매 경기가 상당히 신예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고 실험적인 전술을 테스트하는 등 과도기적인 시기였는데, 여전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직후 열린 월드컵이라 당시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국가대표팀을 겨냥한 [[기레기]]들의 공격에 주요 타겟이 되고 만다. 김영광의 경우 특히 그 정도가 심했는데, 수비진과의 사인 미스로 인한 실점이 나온 [[2006년]] [[9월]]의 이란전[* [[김상식(축구)|김상식]] - 김영광 사이의 콜 미스로 인해 김상식이 공을 받으러 나오던 김영광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공을 뺏기고 어처구니 없이 로빙슛에 무너진 경기.]을 계기로 안정성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iEzkkqwnA|2006년 이란전 4분 10초]]. 한달 후 시리아전에서는 롱패스 한방에 어처구니 없이 뚫린 수비진이 만들어낸 1:1 상황을 차단하려고 오버래핑을 시도해서 성공하는 듯 했으나 수비 복귀가 늦어 이후 처리가 안 되어 실점하게 된다. 당시 김영광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으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214&aid=0000020221|언론 보도]] 참조. 축구협회는 감독을 보호하지 않았고, 언론의 비난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모두에게 쏟아졌다. 결국 이후 경기들은 실험적인 건 하나도 없이 지지 않으려는 지루한 경기가 되는 최악의 사태를 낳게 됐으며, 김영광은 당시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의 프런트 및 당시 감독 [[허정무]]와의 불화로 인해 이후 울산으로 이적하는 등 영 좋지 못한 해를 보내게 되고, 결국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이후로는 주전 골키퍼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2012년 2월 25일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에 출전에 4대2 승리를 했다. 쿠웨이트 월드컵 3차 예선에는 정성룡이 출전했다. [include(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도 포함되었지만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다. 16강 우루과이 전에서 정성룡의 실책이 워낙 컸던 탓에 그를 주전으로 채용 안한 허정무 감독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 또한 있었다.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이운재]]''', [[김용대]], 김영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참가[* '''[[정성룡]]''', [[이운재]], 김영광] * 2004년~2012년까지 성인 대표팀 17경기 출전, 15실점 == 플레이 스타일 == [youtube(XqRXrqEouJk)] 주된 장점은 반사 신경과 위치 선정으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를 보여준다. [[이운재]]와 [[김병지]] 이후 최고의 반사 신경을 가진 골리로 불린다.[* 동시대에 자신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던 [[정성룡]]이 워낙 기복이 심하고, 잔실수가 많은 탓에 그를 주전에서 밀어낸게 미스터리라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이 당시 [[올리버 칸]]의 [[도플갱어]]로 불린 까닭에 별명이 '리틀 칸'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킥 패스가 꽤나 정확하다. 특히나 골 킥과 펀트 킥, 수비수나 자기 진영에서 내려오는 백패스를 다시 센터 아크 넘어 상대 진영에 우군에게 넘겨주는 정확도가 꽤 쓸만하다. == 우승 == *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 FA컵: 2006 * 울산 현대 (2007~2013) * K리그 리그컵: 2007, 2011 * AFC 챔피언스 리그: 2012 * 국가대표 (2003~2012) * 2007 AFC 아시안컵: 3위 == 논란 == [[파일:htm_200710211834260110000001100200-001.jpg]] [youtube(LLzodkAW-fA)] 2007년 10월 21일 [[대전 시티즌]]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서 대전 관중이 던진 물병을 대전 관중을 향해 던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이에 흥분한 대전 팬들은 물병을 계속 그라운드로 던져졌고, 일부 팬은 그라운드로 진입하려고 했으며, 경호원들의 제지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5분여동안 경기는 중단됐다. 결국 김영광은 이날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는 것은 물론 6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6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zodkAW-fA|링크]] 물론 먼저 대전팬이 물병을 던져 시비를 건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한편 이 사건으로 김영광은 대전팬들에게 완전히 찍혀버렸고, 대전과의 경기 때마다 강한 야유를 듣는다. == 기타 == * [[프리커버리]]라는 회사에서 김영광을 위한 전용 골키퍼 장갑을 제작하는데 나이키 베이퍼그립 RS와 매우 유사하다. * [[팬 서비스]]가 매우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에게 일일이 사진과 사인을 해준다. [[에펨코리아]] 등의 축구 커뮤니티에 '가자매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일일이 댓글을 달아준다. 그 외에 SNS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팬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국축팬들 대다수가 좋아하는 호감형 선수이다. 서울 이랜드 소속이던 2018년 5월, [[보배드림]]에 직접 글을 올려 직관을 부탁하였고, 이는 많은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성남 이적 후 코로나로 직접 사인은 못해주지만, 골키퍼 장갑을 블랙존 팬들에게 선물하거나 인스타그램에 남긴 댓글에 일일이 호응해주는 걸로 대체한다. * [[성남 FC]]에 입단 후에는 등번호 41번을 사용한다 데뷔할 때 썼던 등번호로, 초심을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 올림픽 참가 이력이 있는 [[병역특례]] 대상자이기 때문에 종종 메달을 받아 [[병역특례]]를 획득한 것으로 오해받곤 하는데, 실제로는 병역특례가 아닌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5급이 나오면서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애초에 김영광이 참가한 아테네 올림픽에서 축구는 메달을 못 땄다.] * 2005년에 [[맥도날드]]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건강 캠페인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http://www.foodtoday.or.kr/news/article.html?no=18478|#]] * 어린 시절부터 레귤러를 해왔기에 아무리 골키퍼가 선수 생명이 긴 포지션이라지만 많은 경기 출장에 손가락 부상도 꽤 많이 당해왔고 이 부상을 안고 무리하게 출장하느라 결국 김영광의 왼쪽 4번째 손가락은 옆으로 휘어진 채로 붙어서 평생 결혼 반지를 못끼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다. * 재미있게도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니폼 뒤에 적힌 이름은 영어식 표기인 young-kwang이 아닌 자신의 이름 '영광'을 그대로 영어로 바꾼 glory다.--김글로리-- == 둘러보기 == [include(틀:성남 FC)] [[분류:1983년 출생]][[분류:고흥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순천중앙초등학교 출신]][[분류:순천매산중학교 출신]][[분류:광양제철고등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골키퍼]][[분류:2002년 데뷔]][[분류: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분류:울산 현대/역대 주장]][[분류:경남 FC/은퇴, 이적]][[분류:서울 이랜드 FC/은퇴, 이적]][[분류:서울 이랜드 FC/역대 주장]][[분류:성남 FC/현역]][[분류:K리그2 베스트 골키퍼]][[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분류: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0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