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 (문서 편집) [Include(틀:대한민국의 보물)] [[파일: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1.jpg]] [[https://www.yna.co.kr/view/PYH20190226248100013|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군위 인각사 출토 '금동사자형 병향로']] [목차] [clearfix] == 개요 ==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遺構)에서 2008년 발굴된 8세기~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 병향로. 현재 서울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함께 발견된 다른 유물 17점과 함께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이란 명칭으로 2019년 5월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2022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파일: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4.jpg]] [[https://blog.naver.com/chefjhkim/70183515148|사진 출처 :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인각사 특별전]] [[고려]]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유명한 인각사에서 2008년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이다. 제작연대는 대략 8세기 중반-10세기 중반이라고 추정한다. 불보살에 올리는 공양은 향(香)과 화(花), 등(燈) 세 가지가 기본을 이루는데, 이중 향공양(香供養)은 원래 귀인을 맞이할 때 향을 몸에 뿌려 향기를 내게 하고 악취를 제거하며 [[해충]]을 쫓기 위해 사용하던 관습이 부정을 제거하고 마음의 때까지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불보살 공양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향공양을 위해 필요한 불구가 향로인데, 신라시대의 향로는 그 형태에 따라 손잡이가 없는 거향로(居香爐), 손잡이가 있는 병향로(甁香爐), 걸어두는 현향로(懸香爐)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또 병향로를 손잡이 끝의 장식에 따라 작미형병향로(鵲尾形柄香爐), 사자진병향로(獅子鎭柄香爐), 병진병향로(甁鎭柄香爐), 무진자병향로(無鎭子柄香爐), 연지형병향로(蓮枝形柄香爐)로 분류하는데 이 유물은 대략 9세기 무렵에 인각사에서 사용되던 금동 사자진병향로로, 연대적으로도 예술성으로도 귀중한 한국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사자진은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사자]]상을 만들어 부착한 양식이다. [[파일: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3.jpg]] 한국에는 다양한 신라시대 병향로가 남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신라시대 금동 병향로가 있는데 상태는 가장 좋으나 발굴된 장소가 불명확하고, 또한 경남고고학연구소가 2003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발굴한 금향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 경주 [[석굴암]] 주실 주벽의 나한상이 든 향로,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경주 남산 탑곡마애조상군의 손잡이향로를 들고 있는 비구상 등도 이러한 향로를 들고 있다. [[파일: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6.jpg]]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676|사진 출처 : 정창원, 고대문화교류사 연구의 보고]] [[일본]] [[정창원]]에도 천황가의 유물로 비슷한 금동사자형 병향로가 1점 소장되었다. 과거 [[일본]] 학계에서는 자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고유한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한국]]에서 동일한 양식의 향로가 계속 발견되면서 학술적인 논의가 나왔다. 그러다 정창원 병향로보다 제작연대가 확실히 앞서는 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가 발견되면서 한일 양국 학계의 여론이 점차 신라에서 최초 제작한 후 일본에 수출한 작품인 것으로 기울었다. 다만 신라 쪽이 원조로 완전히 확정된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와는 달리 아직 이견을 내는 학자들이 있으므로 학계 여론이 완전히 일치된 것은 아니다. [[파일: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5.jpg]] 함께 출토된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북(金鼓) 등 17점의 유물과 함께 2019년 5월 2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군위_인각사_출토_공양구_일괄|한국어 위키백과 :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3698|불교신문 : 화보/ 군위 인각사 발굴 통일신라 유물]] * [[http://travelling.co.kr/80128665726|인각사 출토 유물 사진전]] == 보물 제2022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20220000,11&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軍威 麟角寺 出土 供養具 一括)]]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은 2008년 경상북도 군위군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遺構)에서 발된 유물로서 금속공예품과 도자류로 구성된 총 18점의 일괄 출토품이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고려 초기에 제작된 유물로 추정된다. 금속공예품은 총 11점으로 금동사자형 병향로(柄香爐),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북[金鼓] 등으로 구성되었고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서 조형성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인다. 그 중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도상적(圖像的)으로 희귀하며 청동발과 청동뚜껑[접시] 역시 통일신라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기형(器形)으로서 당대 공예기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위 인각사 출토 일괄유물 가운데 청자 7점은 모두 중국산으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포개진 채 출토되어 공반(供伴) 유물로서 가치가 있으며 함께 출토된 금속유물의 제작시기 등을 추정하는데 참고가 된다. 청자는 8세기말~10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 출토 중국도자의 편년기준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산 청자의 제작시기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신라 말~고려 초 금속공예품들은 대부분 사찰이나 박물관 등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물인 반면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보기 드문 금속기명과 청자 유물들이 공반 출토되어 명확한 출토지와 편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불교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군위군의 문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