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월성로 유리잔 (문서 편집) [[파일:경주 월성로 유리잔1.jpg]]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3444.html|사진 출처 : 하수관 아래서 찾은 '신라史 퍼즐' 한 조각]]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의 월성로 가-13호 무덤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유리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서봉총 유리잔1.jpg]] [[서봉총 유리잔]]과 함께 전시된 모습. 1985년 3월 전국소년체전 준비를 위한 환경미화 차원에서 [[경주시|경주]] 월성로(月城路)의 아스팔트를 다시 포장하고 좌우에 매설된 하수관을 교체하던 과정에서 총 56기의 고신라시대 고분이 발견되자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가-13호 고분 및 기타 몇개 고분을 부분발굴하던 중 발견된 것이다. 당시 가-13호 고분에서는 [[경주 월성로 금귀걸이]], [[경주 월성로 금목걸이]], [[경주 월성로 금구슬]] 등 약 800여점의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 아직 고분군의 완전 발굴은 이루어진 적이 없으나 [[경주 월성|월성]] 주변은 이미 3세기대부터 고분군이 조영되기 시작하였고, 늦어도 4세기 전반에는 이혈 으뜸·딸린덧널식의 대형 덧널무덤이 조영되는 등 고신라 초기부터 무덤 조성이 이루어진 이른 시기의 고분군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유리잔의 제작 연대 또한 대략 4~5세기(서기 300~400년대)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무덤의 일부만을 발굴할 수 있었고 발굴하지 못한 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도로 아래에 그대로 묻혀 있다. 이때 월성로 하수관 아래서 발굴된 신라 무덤과 유물들은 4세기 당시 신라의 중심지가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경주시|경주]] 시내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기 300년대 전부터 이미 [[지중해]], [[서아시아]] 지역과 [[신라]]가 서로 교류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년 전에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유리잔으로, 당시 한국의 대외 교류 및 국제 관계에 대해서 연구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분류:신라의 공예]][[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