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교동 금제 드리개 (문서 편집) [[파일:경주 교동 금제 드리개1.jpg]] [[https://dankoon2001.blog.me/60158894750|사진 출처 : 신라시대 드리개]]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반월성(半月城) 부근에 위치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94332&cid=46620&categoryId=46620|경주 교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황금]] 드리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4.jpg]] [[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와 함께 전시된 모습. [[경상북도]] [[경주시]] 반월성(半月城) 북쪽 일대에 위치한 교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제 드리개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4~5세기(서기 3~400년대) 경이다. 경주 교동 고분군은 전(傳) [[내물왕]]릉(奈勿王陵)을 비롯한 10여개의 신라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 1970년대 초 한 고분에서 [[교동 금관]]이 [[도굴]]되기도 한 곳이다. 확인 결과 소속된 고분들이 대부분 고신라 초기의 무덤 양식을 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에서도 내물왕릉이 [[첨성대]](瞻星臺) 남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었는데, 현재 이 고분군의 위치와 일치하여 대략 4세기 초부터 조영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순금 드리개는 경주 교동 고분에서 발견되었으며, 금관이나 금동관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위세품의 일종으로 사용되었다. 일종의 [[귀걸이]]와 유사한데 교동 금드리개의 경우 길쭉한 나선 모양의 장식이 여러개 연결된 일반적인 금드리개와는 달리 금구슬 형태의 장식에 달개를 달아 더욱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한국]]에서 만들어진 황금 장신구로,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