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원용 (문서 편집) [[분류:대한민국의 장로회 목사]][[분류:1917년 출생]][[분류:2006년 사망]][[분류:리원군 출신 인물]][[분류:노태우 정부/인사]][[분류:통일운동가]][[분류:실향민]][[분류: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분류: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분류: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include(틀:역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 {{{#ffffff '''강원용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3764 0%, #003764 20%, #003764 80%, #003764)"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ffffff 대한민국 제6·7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br]{{{#ffffff {{{+1 강원용}}}[br]姜元龍}}}'''}}}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ttachment/20060817_j01.jpg|width=100%]]}}} || ||<|2> '''출생''' ||[[1917년]] [[7월 3일]] || ||[[함경남도]] [[이원군]] 남송면 원평리 || || '''사망''' ||[[2006년]] [[8월 17일]] (향년 89세) || || '''직업''' ||[[목사]], [[정치인]], [[철학자]], 통일운동가, 교육자, 시민사회운동가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종교''' ||[[개신교]] || || '''배우자''' ||김명주 || || '''자녀''' ||딸 강혜자, 강혜원[br]아들 강대인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회자이자 [[정치인]], [[철학자]], 통일운동가, 교육자, 시민사회운동가이다. == 생애 == [Youtube(1ych37jmHb8)] 1985년 4월 22일 KBS2 <11시에 만납시다> 인터뷰 영상. 1917년 [[함경남도]] [[이원군]] 남송면 원평리에서 태어났으며 [[유교]]적 가풍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재학 시절이던 1931년 [[개신교]]인이 된다. 개신교인이 되자 집안의 반대는 당연히 심하였고, 그의 조모는 슬퍼하셨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농촌 계몽운동에 감화되어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신념을 안고 [[만주]] 용정으로 건너갔다. 당시 1935년에는 만주의 [[북간도]] 용정의 용정중학으로 진학, [[윤동주]], [[문익환]]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브나로드 운동]]에도 참가하였다. 1944년에는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8.15 광복]] 이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중도파 정치인들과 같은 노선을 걸어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경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조봉암]]과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으나, 기본적으로 반공보수 성향인 강원용은 조봉암의 지지 요구는 거절하였다. 정부수립 이후에는 재야 민주화운동에 참여, 반 독재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1980년대 [[5공]]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는 당시 [[신군부]]에 호의적으로 돌아서면서 일명 5공 시대의 변절자 '''[[윤보선|윤]][[천관우|천]][[지학순|지]]강''' 중 '''강'''으로 꼽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 땐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박노해]] 석방 탄원서에 제일 먼저 서명할 정도로 인권 문제에 있어선 나름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말년에는 [[참여정부]]의 일부 정책이나 녹록지 않은 친일 청산 작업 등을 비판해 [[친노]] 진영이나 [[한겨레신문]] 등과 충돌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17일, [[노환]]으로 소천하였다. 향년 89세. == 성향 == 강원용 목사는 [[친미]] [[보수주의|보수]] 성향의 기독교 목회자로, [[반미]] 성향이나 [[사회주의]] 노선과는 처음부터 결이 달랐다. [[조봉암]]을 포함한 혁신계 인사들과 친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활동하자는 제안을 끝끝내 뿌리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그의 [[남로당]] 경력에 주목해서, [[미국]] [[외교관]]들에게 "박정희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증언이 남아있다. 그만큼 일관된 '친미반공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에 대해서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된다란 말도 하고 있다. 때문에 [[박정희]] 정권 시절 야권을 지원하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그가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서 멀어진 것도, 고령으로 건강 때문에 활동이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한 축이던 학생 운동권에 반미 성향[* [[광주학살]]과 [[12.12 쿠데타]]가 가능했던 것이 [[미국]]의 승인 혹은 묵시적 동조가 있었던 것으로 봤던 것이 가장 큰 배경. 실제 평시 군 통수권이 [[미군]]에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미국의 묵인 없이는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는게 힘들긴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과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었다. 참고로 이렇게 광주학살엔 침묵한 미국은 이후 정신을 차렸는지(?) [[6.10 항쟁]] 땐 시위대에 군 부대 투입을 검토하던 --돌아이-- [[전두환]]에게 경고하며 나름 민주 세력에 도움을 준다.]이나 사회주의 노선이 전면적으로 대두된 것 역시 꽤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훗날 강 목사는 "386세대가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강 목사뿐만 아니라,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반공 성향은 [[윤보선|윤]][[천관우|천]][[지학순|지]]강 4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들이 1980년대 공통적으로 민주화 운동 일선에서 멀어진 건 어떻게 보면 필연일지도. 물론 이들이 비판받는건 그냥 일선에서 물러난 정도가 아니라 군부정권에 협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행위들 역시 있었기 때문이라, 마냥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이 사람도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하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긴 하다만 말이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이 다소 우파쪽에 가까웠을지언정 평화주의를 지향했고, 타 종교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취했다. 적어도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41|불교 믿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보내고 무인도에 보내.. 기독교 국가를 만들자]]”처럼 [[대한민국 헌법]]과 인권 관련 법률에서 보장하는 [[세속국가]], [[종교의 자유]] 등과 같은 [[기본권]]을 위반하는 [[망언]]을 서슴치 않게 내뱉는 [[전광훈]]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말년에는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불교]]의 [[법정 스님]]과 같이 종교간 대화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종교인으로서, 일부 비 개신교인들에게도 이미지가 좋은 목사로, 긍정적 인식이 많은 편이다. [* 사실 그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이 장로교회 교단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엄밀히 따지면 중도~진보)성향이다.] == 여담 == 저서로 <역사의 언덕에서>가 있다. 월간 [[신동아]] 2003년 12월호부터 5회에 걸쳐서 <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라는 인터뷰가 연재되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2998/1|①]],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079/1|②]], [[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3154/1|③]],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237/1|④]],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3322/1|⑤]] 사후 1년 후에 그가 모은 책 5,173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다. 6차, 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그의 [[수필]] 중 하나인 '30년 전의 그 날'이 수록된 적이 있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서 고된 감옥 생활을 할 때 영혼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https://kwaus.org/yhHong/data_board_5/51382|수필 전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